내 아이를 위해.... (이 땅위에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내가 현재 살고 있는 UCLA Campus 와 Westwood 거리에서는 종종 5살 미만의 꼬마 아이들을 보게 된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며 내가 탄 전동휠체어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접하게 될 때면 내 마음속에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귀엽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는데 요새 들어서는 '아, 나도 곧 저런 아이를 갖게 되겠지' 하는 기대감과 함께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키우나' 하는 막연한 초조감에 가슴이 착찹해옴을 느낀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상황에서, 또 내가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판국에 왠 그리 성급한 걱정이냐고 하겠지마는, 그리 순탄치 못할 나의 인생에서, 그리고 결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 속에서 내가 과연 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에게 또 하나의 적지 않는 부담을 안겨 준다.

또한 나는 가끔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면 역시 치료를 받으러 온 장애 아기와 그 부모를 만나게 된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엄마가 자꾸 뒤틀어지는 아이의 몸을 바로 잡으며 열심히 운동을 시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30년 전 우리 어머니도 저러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 엄마에게 '고생한다' 라는 격려의 말을 건네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희들이 이 다음 자라서는 이 나라가 좀 더 사람 사는 세상이 되어 차별이나 굴욕을 당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깊은 한숨이 섞인 단상과 함께 새로운 다짐을 해 보곤 한다.

나에게는 한 가지 아픈 기억이 있다. 우리 3남매가 모두 어린 시절, 하루는 내 막내 동생 성욱이가 밖에 놀러 나갔다가 울면서 들어 왔다. 이유를 들어본 즉 동네의 한 아이가 우리집에 와서 날 보더니 내 모습이 이상하다며 성욱이에게 '너의 형이 다 나을 때까지 너랑 안 놀겠다' 고 하였고 이에 화가 난 성욱이가 그 녀석과 한바탕 싸웠다고 한다. '왜 형은 걸음도 못 걷는 거야' 하는 동생의 울먹임을 들으며 나도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의 비참한 운명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이렇게 나의 육체적 장애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의 현명하신 대처와 노력으로, 또 착한 내 동생들의 인내와 순종으로 지금까지 우리 식구는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왔다. 나는 이 것을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 여기며 나의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혼하기도 어렵거니와 결혼을 한다 할지라도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나는 견딜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 아내가 져야 하는 부담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더구나 아이까지 생기면 일은 더욱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키우는 것도 큰 문제지만 내 아이가 성욱이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들어 와서 '아빠는 왜 걸음도 못 걷는거야'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빠의 운명 때문에 아이의 가슴에까지 피멍이 맺혀야 하다니... 이런 생각을 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모든 의욕과 자신감이 사라저 버린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대로 인생을 마감하고만 싶어진다.

그러나 과연 여기서 그만 둘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를 키우시느라고 모든 정성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신 우리 부모님의 노고와 헌신은 어쩌라고, 또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내가 흘려야 했던 피와 땀과 눈물의 정열과 노력은 어떻하라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내가 힘들다고 여기서 포기한다면 그것은 나를 핵황달의 병마에서 살리시고 뇌성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내 삶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는 행위이다. 영원히 저주받을 커다란 죄일 것이다.

그렇다. 방법은 단 한 가지. 정면대결 밖에 없다. 더 악착 같이 노력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앞에 놓인 모든 불가능과 고난, 시련을 깨부수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것이다. 이렇게 내 운명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수많은 나의 동료들을 위해 이 비겁한 세상과 싸워 나가야 한다.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 400만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아픔이요 굴욕인 것이다. 보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나는 장애인을 탄압하고 괴롭히는 온갖 못된 악법, 제도, 관행, 인식들과 줄기차게 투쟁해 나갈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백인들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애틀란타시의 'Funky Park' 유원지에 놀러 가자고 졸라대는 그의 아이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 더욱 더 위대한 흑인해방운동을 펼쳐 나갔다고 한다. 나도 장차 태어날 내 아이가 나 때문에 수치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오히려 장애를 가진 아빠를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나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먼 훗날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네 아빠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하고 굴곡이 많았지만 그래도 네 앞에 떳떳하게 서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투쟁했노라" 라고...

1999. 4.

이 준수 드림 (Claremont School of Theology)

"나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부디 절 도와주소서. 이 모든 것 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차고 부족합니다. 당신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디 저에게 큰 용기와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제가 올바른 영적 지도자, 훌륭한 학자, 착한 아들, 자상한 오빠, 형, 성실한 남편, 좋은 아빠, 믿음직스런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저의 인생 끝날 때까지 항상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항상 저와 동행하여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