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봄, 현재 제 아내인 문현정 자매와 한창 교제할 때 제 생각을 적은 글 입니다.>
내 여인을 위해 (진실된 사랑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먼저 여자에게 사귀기 위해 접근해 본 적이 없다. 나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아니 그 보다는 육체적 장애로 인해 여자에게 다가갈 현실적인 기회와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다. 사춘기 이후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고 사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내가 다가가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일종의 장애인 특유의 경계심과 거절당하거나 망신당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혹은 자괴감이 한 인간으로서의 정상적인 욕구를 짓눌러 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학교 입학 이후 지난 10년 동안 나는 3명의 여성을 사귀어 본 경험이 있다. 이들 역시 내가 처음부터 다가선 적은 한번도 없고 그들이 먼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 다음 내가 반응을 보여서 친구로,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성들이 접근할 때 나는 우선 소극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한동안 그들의 태도를 살핀다. 그들의 마음이 진심인지, 단지 장애인에 대한 일시적 동정이 아닌지 우선 알아보아야 한다. 한낱 동정과 호기심인 것을 진심으로 잘못 판단하여 적쟎게 상처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3명의 여인은 이런 동정과 일시적 호기심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서 나를 대해 주었고 나도 마음의 문을 열어 어느 정도 관계가 지속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나를 떠나 버렸다. 이별의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나의 육체적 장애로 인한 사회의 곱지 못한 편견과 선입관이 그들을 괴롭혔고 고민하게 했으며 결국 내 곁을 떠나가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정상적인 남자들에 비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기대만큼 내가 부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내 곁을 떠나갔고 나는 첫 번째 여인을 제외하고는 그저 말없이 보내주었다. 결코 붙잡지 않았다. 가슴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복받쳐 올랐지만 이런 감정을 겉으로 표출한다는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한 가닥 자존심마저 짓뭉게 버리는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무척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들이 먼저 다가와서 나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속삭이며 정 주고 마음 주고, 나도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건만 결국에는 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며 떠나가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상처받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밀려드는 고독을 참지 못해 감정에 휩쓸려 버리고 버림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야만 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도 무능하고 한심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내 나이 서른 하나인 지금 지난 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이런 생각들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이것도 일종의 '피해의식' 이다. 당당히 내가 책임지지 못하고 남에게 돌리려는 운명 회피 현상이다.
그렇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나는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보단 내 자존심을 먼저 챙겼고 운명 극복을 위한 치열한 노력보다는 환경을 탓했다. 아무리 편견과 선입관이 심하더라도 나의 의지와 사랑이 그보다 더 확고하다면 내 여자를 지켜낼 수 있었을텐데... 또한 나는 이해하기 보단 이해 받으려고 했고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으려고 했다.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여자를 따스이 감싸주지 못했고 흔들리는 여자를 꼭 붙잡아 주지 못했으며 떠나는 여자를 축복해주지 못했다. 물론 나도 힘들고 어려워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변명이 되지 않는다.
보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커다란 포용력과 이해심이 있어야 한다. 모든 걸 감싸고 사랑할 수 있는 커다란 가슴이 필요하다. 당장의 눈앞의 감정에 좌우되기보다는 보다 멀리 있는 진실을 바라 볼 수 있는 지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다.
나는 현재 또 다른 한 명의 여인을 알아가고 있다. '사귄다' 거나 '교제한다' 라는 진부한 단어보다는 '알아간다' 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녀 역시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작년 11월 말 인터넷 채팅 사이트인 ‘다음 메신저’ 대화방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지난 겨울 한국에 나가 30일 동안 17번이나 만났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전화나 메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4살 어리다. 그러나 생각은 무척 깊고 현명하다. 나의 고독과 상처를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척이나 상큼하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아가씨다.
요즘 그녀로 인해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할까? 그녀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이성으로서의 감정보다는 오빠의 입장에서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녀가 원하는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적은 힘이나마 도와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영원히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녀가 원하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리라 마음을 다져 본다.
지난 주일 목사님이 설교해 주셨던 프란체스코 성인처럼 나도 나의 모든 아픔과 고뇌를 넘어 이해 받기 보단 이해하고 위로 받기 보단 위로 해주며 사랑을 원하기 보단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 준수 드림
찰스 김: CMF에 있는 찰스라는 형제입니다. 진솔한 형제님의 글 감사했습니다. 약할때 강함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11월 초에 있을 CMF 가족 모임때 만나 뵐 것을 기대합니다. 좋은 글 그리고 간증 계속 부탁 드려요. 형제님의 가정에 주님의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빕니다. -[10/24-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