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4일)은 두란노 서원이 하는 큐티 축제에 갔습니다.
Touch LA 2004 라는 제목으로 하용조 목사님이 강사셨지요

시작하면서 저희 동네에 새로 개척한 온누리 교회의 반태효 목사님이
어느 무신론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 글은 유명하신 문인이신 이어령님의 글이었어요
그분이 점점.. 주님께로 가까이 닥어오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부인을 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 이어령님의 외동딸이 나와 큐티의 간증을 하였지요
그가 바로 제 아들의 변호사였던 장미나 변호사입니다.
며칠전 장 변호사가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몇분의 목사님을 모시고 기도를 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장 변호사는 자신의 감추고 있던 신상에 대해
아주 솔찍히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역사했던 주님을 간증하였지요

그녀는 어디서 결혼했는지 모르지만 큰 아들이 버클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밑으로 두 아들과 딸 하나가 더 있지요
나중에 나은 세 아이는 재혼을 하여 낳은 아이입니다.
(아들이 하나인지 둘인지 잘 모르겠네요)
꽤나 유명인사와 결혼했던 그녀가 이혼을 하고 혼자 있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요
아들 하나를 데리고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요
그러다 변호사인 분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몸에 갑상선 암이 자라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요
아이를 임신하고 나중에 갑상선 암인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며 그녀는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미국 검찰청에서 십년을 검사로 일하고 있었지요
그런 그녀가 어려운 건강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아이가 행동 장애가 있는 아이였습니다.
늘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 보아야하고
학교에서도 그 아이를 다룰 수가 없어 쫒겨나야 했고..
그러며 그렇게 똑똑한 장 변호사는 자신의 아이가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런 성적과 학교에서의 거절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행동 장애 아이가 가는 마지막 학교에서 조차도
그 아이는 쫒겨나게 되면서..
장 변호사에게는 한없는 절망의 시간이 닥아 왔습니다.
그러며 갈 수록 약해지는 몸으로 외출조차도 할 수없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녀가 검사의 일도 다 그만두고 한 사람의 엄마로, 환자로 살면서
그런 가운데 어느날 하용조 목사님의 집회를 통해 혼자 은혜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하목사님도 그녀가 와서 은혜를 받는지도 모르셨지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질병은 물론이고
아들에 관한 것도 다 내려놓으며 주님앞에 많은 눈물을 쏟으며
한 사람의 탕자가 되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녀에게 아이들에 대한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녀에게 어린 양을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후 검찰청으로 돌아가려던 장변호사는 변호사로
나눔에 있는 아이들 같이 방황하며 범죄의 길에 들어선 아이들을 위해
변호하며 주님을 전하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모든 식구들이 스키를 타러가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답니다.
그녀는 지훈이라는 아이를 면회가야 했습니다.
다들 휴가를 떠나는데 혼자 남게 된 그녀는 마음속에 불평이 생겼지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피곤한 몸으로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끝 줄에 누군가 계속 울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분은 바로 주님이셨다고 합니다.
주님을 본 것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지훈이를 사랑하는지 아느냐며
고맙다" 고 하셨답니다.
그 후 지훈이는 나눔에 오게 되고 늘 그곳에서도 말썽을 부리고
제 아들이 나눔에 갔을 때 때려서 이를 부러뜨린 아이지요
그 아이가 이제는 변해서 정말 좋은 크리스챤이 되어있습니다.
그 후 장변호사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변호사로뿐 아니라 기회가 되면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로서의 삶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년간 그 아들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장변호사는 늘 일년에 6일를 암 검사를 받기위해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암도 이제는 다 주님께 맡기고 있지요.
그날 그녀가 간증을 할 때
어느 목사님의 설교보다도 그녀의 뼈아픈 삶속에 만났던 주님이
더욱더 생생하게 우리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고
자신이 재혼했다는 것과 아들이 그렇게 장애아인 것을 말했습니다.
오래도록 감추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주님 앞에 모두 벗어 버리고
주여 내가 낫기를 원하나이다 하던 병자와 같이
주님 앞에 그녀는 서 있었습니다.

큐티를 통해 만났던 주님을 증거하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눈부시게 빛났고
주님이 그녀를 안고 가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간증이 끝나고 유 승준이 나와서 찬양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하루도 새벽기도를 빼지 않앗던 승준 형제는
언제가 나눔 선교회에 와서
지난 날 자신이 마약에 젖어 있었다가 하나님을 만난 간증을 해서
많은 아이들에게 소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승준 형제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신다."
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승준 형제도 한국에서의 일로 인해 많이 힘들고
현재는 헐리웃으로 진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며 늘 하용조 목사님이 오시면 은혜를 받기 위해
빠짐없이 집회에 참석하고 전에는 하 목사님과 함께
아프카니스탄에 다녀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목사님은 승준 형제에게 목사요 선교사의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일 헐리웃으로 진출한다면
아마도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귀한 복음의 사역자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시종 승준 형제는 눈물을 흘리며 간증을 하고
찬양을 부르는데도 눈물로 인해 찬양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승준형제를 보며
하용조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고난이 끝나야 하는데도 계속 될 때 거기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전 그 순간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어디가서 말하기도 챙피한 제 입장인데
그 말씀은 저를 많이 위로하며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래..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그런 마음속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일은 정변호사와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큐티 나눔을 갖기로 한
첫날입니다.
두란도 큐티 강사시라는 임혜재 권사님이 미국에 계셔서
그 분하고 같이 큐티를 나누는데
저는 이제 막 입문한 입장이라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큐티를 시작했다가 그만 둔 것이 수도 없는데
이제는 결국 발목이 붙잡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저들을 만나주신 주님이 너무 아름다워
나도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 해야 합니다.

말씀속에 계신 주님을 아침마다 만나서
그 주님을 나의 삶속으로 모셔오는 작업입니다.

주님 성경에서 어서 나오세요
그리고 저 파아란 하늘아래로 함께 걸어요
여기가 바로 디베랴 바닷가이며
주님이 산상 수훈을 하셨던 그 축복산입니다.
어서 오십시요...










이정금: 죄송합니다. 줄을 바꾸려고 enter를 쳤는데 그대로 저장이 되어버렸네요... 세 번씩이나... 죄송합니다. 정말 은혜 많이 받았고 제가 한없이 부끄럽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세상속에 마구마구 퍼져가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01/29-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