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용서합니다...
내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UCLA의 문과대 도서관 (University Research Library) 건물 뒤쪽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푸른 잔디 위에 아기자기한 조각이나 모빌들도 진열되어 있고 벤치도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제법 운치 있는 곳이어서 나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피곤하면 이 곳에 들려 휴식을 취하곤 한다. 어제도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바람을 쐬러 그 공원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는데 한쪽 구석 벤치에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동양인 남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연인 사이인지 뭔가 서로 소곤소곤 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그들 앞을 지나갔다. 그들은 그 강아지를 들어 올려 품에 안더니 등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무척 귀여워했다. 나도 앉을 곳을 찾다가 비어 있는 벤치가 없어서 그들이 앉아 있는 한쪽 모퉁이에 걸터 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힐끗 보더니 재빨리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황당했다. 극도의 당혹감과 수치스러움이 몰려 왔다. 강아지가 왔을 때는 이쁘다고 쓰다듬으며 별짓을 다 하면서 같은 인간인 내가 다가가니까 얼른 자리를 피해 버리다니... 아, 내 모습이 그렇게 추악한가... 나는 개만도 못한 존재구나... 눈물 한 방울과 함께 '하나님, 내가 언제까지 이런 꼴을 당해야 합니까' 하는 긴 탄식이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나 잠시후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그래도 저들을 용서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와 믿음을 나에게 주소서...'
전두환 군사독재의 폭압이 서슬 퍼렇던 제5공화국 초기, 작가 한수산씨는 한 일간신문의 연재소설에서 권력자를 풍자하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악명 높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물고문, 전기고문 등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온갖 못된 짓을 다 당하고 벽 한쪽 구석에 엎어져 신음하고 있던 그에게 빨간 볼펜으로 적힌 글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옵나이다....'
순간 자기 말고 다른 사람도 역시 이 짓을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용서란 전혀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용서이다. 극도의 슬픔과 절망 상태에서, 또는 절대적인 억압과 폭력의 상황에서 자신에게 그런 절망과 폭력을 가한 대상을 향해 관용과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 이것이 참다운 의미의 용서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형제가 나한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하나이까. 일곱 번까지 하나이까?' 라고 물어 보았다. 당시 유대교의 랍비들은 3번까지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7번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어 본 것도 상당한 아량을 베푼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아무 조건이 없는 무제한적인 용서를 선포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남을 용서해야 하는 상황이 수도 없이 많았다. 바로 장애인을 차별과 멸시, 억압의 대상으로 보는 이 사회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지난 어린 시절 나를 '바보,병신'이라고 놀리던 아이들서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 자기 자식들의 내신성적이 떨어질까 봐 나를 그토록 견제하고 몰아세웠던 학부형들, 그런 학부형들의 모함에 장단 맞추며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나를 힘들게만 했던 일부 선생들, 학력고사 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커녕 입학원서조차 받지 않았던 이 나라 최고의 대학들, 미국 유학 올 때 격려는 못해줄 망정 '네가 어떻게 해나가겠느냐' 하는 냉소로 빈정거리며 추천서 써주는 것조차 거부했던 교수, 그리고 자기 딸 망친다고 나를 극도로 미워하며 아예 인간 취급도 안 했던 내 옛 여자친구의 부모와 친척들... 이 밖에도 나를 배신하고 모욕하며 나의 앞길을 막았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으며. 나는 그들을 모두 용서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 가해지는 온갖 편견과 굴욕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두환이 백담사에서 그랬던가. 다시 권력을 잡는다면 손봐주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있다고... 나도 어떤 때는 너무 분노와 울화가 치밀어 보복하고 싶다는 감정도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굴욕의 순간보다 은혜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의 신앙과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행해지는 모든 잘못은 용서할 수 있지만, 나의 동료들, 우리 400만 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이 사회의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이의 극복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한다. 어느 하나의 집단이 그보다 약한 집단에게 가하는 악행은 단순히 용서의 차원으로만 끝나서는 안되며 그 악행의 본질을 밝히고 뿌리를 완전히 끊어 버리는 동시에 그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철저한 사과와 회개가 요구된다. 바로 1980년 광주의 한을 푸는 문제가 그렇고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일단은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런 다음 문제의 진실이 정확히 파헤쳐져 처벌받을 사항에 대해서는 당당히 처벌받고 용서할 사항에 대해서는 과감한 관용이 베풀어져야 한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이 정확히 밝혀지고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때만이 사회 정의가 바로 세워지고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광주 학살의 주범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살인자들을 단순히 정략적 이유로 풀어주고, 자신들의 악랄하고 파렴치한 과거는 철저히 숨긴 채 망언과 회피의 주둥아리만 놀리고 있는 도죠히데끼(일본 군국주의의 원흉)의 후예들이 존재하는 한 역사의 진실은 영원히 왜곡되어지고 만다.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진정 정상인과 장애인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사회를 바란다면 강자요 박해자인 정상인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그릇된 인식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그들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 주며 그들의 능력과 실력을 어떤 선입관도 없이 솔직하게 인정하려고 하는 합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상인들의 올바른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질 때 비로소 장애인과 정상인 사이에 놓여 있는 불신과 미움의 장벽은 허물어 질 것이다. 단지 보조금 몇 푼 더 던져주고 전화, 티브이 사용료나 깎아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사회 구성원간의 대등하고 민주적인 통합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장애인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혀지는 사회, 그들의 생존권이 완전히 박탈당하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아무리 발전하고 정치, 제도상의 민주화가 이루어져도 진정한 선진 민주주의 사회는 되지 못한다.
인도의 반영 독립 투쟁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나는 절대 영국인들을 인간적으로 미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것은 그들의 교만과 위선, 그리고 간교한 차별 의식입니다' 라고 말했다. 나도 나를 탄압하고 박해한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을 모두 용서한다. 그러나 내가 당해야 했던 굴욕과 억압은 결코 잊지 못한다. 반드시 극복할 것이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맺힌 모든 한과 상처가 이 나라 400만 장애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한 알의 씨앗이 되고 보다 정의롭고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밑거름이 되도록 나의 모든 혼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주께서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1998. 8.
이 준수 드림
구은혜: 장애인 가족이었던 저로서 충분히 공감합니다. ....정금같이 나오리라 아멘. -[03/08-07:13]-
임영호 목사: 기록하신 글을 읽는 중에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2,33) 마음의 아픔을 안고 장애우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임영호 목사 -[03/21-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