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준수 형제의 처 문현정입니다. 저의 남편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선풍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었던 소년
비가 많이 내렸다, 겨울의 엘에이는 젖어있고 지극히 우수에 깃든 모습이다.
서울에서의 여름철 장마나 가을의 을씨년스런 가을비와는 사뭇다른 겨울의 우기.
캘리포니아를 떠날 수 없는 남편만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 곳의 좋은 날씨와 기후이다.
그이는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자칫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만 많이 불어도
외부로 나다니기가 참으로 불편하기 이루 말 할 수 없다.
다행히 그가 엘에이로 유학을 왔고, 엘에이의 이 '빛나는 날씨'로 그의 생활은
불편함이 많이 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계속되는 비는 조금 곤란해지기 마련이다.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줄 알았는데, 오후가 되자 심한 빗줄기가 걱정된다.
남편이 2주 마다 지도교수를 만나 하는 1:1 수업이 있는 날이기도 해서다.
그는 이 수업을 위해서 만 2주를 거의 2-3시간 자면서 책을 읽고 페이퍼를 썼다.
새벽녘 이-메일로 먼저 페이퍼를 전송하고 나자 탈진하려는 듯 기운이 떨어졌다.
오후 3시경 수업 간다고 준비하면서 그이는 따라나서지 말라고 했다.
강의실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학교기숙사에 살고 있고, 충분히 저 정도의 비는 모자 쓰고
가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 둘은 비에 덜 젖는 방수천으로 된 외투를 걸쳐입고, 책가방도 단단히 싸고.
나는 교실에 가면 젖은 걸 닦으라고 큰 수건도 준비해서 무릎에 덮었다.
우산을 펴고, 그이는 한 손으로 휠체어를 운전하고 나머지 한 손으론 우산을
들고 간다.
우산이 앞으로 쏟아지면 시야가 가리니까 난 곁에서 운전을 드는걸 도와준다.
그렇게 학교 가는 5분의 동행이 참 신나고 재미났다.
'우리 정말로 친하다, 그치? 우리가 자랑스런 클레어몬트의 준수-현정 부부라구!'
남편은 씨익 웃기만 할 뿐 수업 걱정으로 아무 생각이 없나보다.
책상에 랩탑까지 설치하는 걸 보고 1시간 30분 후에 다시 오겠다 했다.
그이의 지도교수 Lori Anne Ferrell 박사는 예일대에서 영국교회사를 전공한 석학이시다.
혹자의 말에 따르면 한때 간호사로도 일을 한 적이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도
한 적이 있는 과거 경력이 아주 화려하고 다채롭다고 했다.
깡마른 몸매에 유난히 빛이 나는 눈동자, 안경뒤로 미소지을 때의 예리함과
찌를듯한 지적인 매력은 상대방을 압도시킨다.
이곳 클레어몬트에 처음 도착해서 그니가 남편의 지도교수가 되었다고 할 적마다 주위 분들은 크게
걱정을 해 주었다.
한국 유학생들 뿐만 아니라 본토 미국 학생들도 쩔쩔매는'너무나도 깐깐한, 너무나도 날카로운' 교수라며 주의를 주곤 하셨다.
남편도 나도 함께 몹시 긴장되어 염려를 했다.
그러나 그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첫학기 그녀와의 수업에서 A를 받았다.
대개 영어 때문에, 수업의 맥을 잡지 못해서, 또 깐깐한 그녀 성격에 질려서
다들 힘들어하는 수업이라 했다.
물론 남편도 그 한 학기 다른 과목보다 몇 배는 열과 성을 다했고, 성실하게
수업을 해 나갔다.
마지막 기말페이퍼를 내고 난 다음 그는 거의 정신을 잃을 만큼 끙끙 앓아
누웠던 것도 설득력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 박사과정 수업을 미리 들으면서도 그이는 걱정을 사서하고
또 돌아서서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시작했다.
2주마다 400페이지 분량의 텍스트를 읽어내야 하는데에 대한 극도의 부담과 8페이지 이상의 페이퍼를
수업 때마다 제출해야 하는 '공포'를 떨치기 힘들었던가 보다. 더구나 책을 읽고 타이핑을 치는데 남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그에게는 체력적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래도 그이는 어제로 1/3선을 넘으면서 잘 해 내고 있다.
벌써 수업 마칠 시간이 다 되어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본다.
혼자였으면 이 길에, 이 비를 맞고 갔을 그였을까?
우리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니 조금 불편할 상황이 즐거운 것인가?
나는 그의 아내된 자리에 서서 무엇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남편은 아주 갓난장이일 때부터 너무 아파서 울 때 빼고는 칭얼거리거나
징징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 번 재우면 언제 깼는지도 모르게 일어나서 혼자 이불 위에서 히죽거리며
웃고 까르륵하면서 혼자 놀고 매우 온순한 있는 어린애였다고 한다.
집에 아무도 없어도 막 울거나 누구를 찾기 보다는 멍하게 기다리고 있던
아이...걸음 걷다 넘어져 피가 날 정도로 다쳐도 끙끙거리기만 할 뿐 눈물도 안 흘렸던
꼬마...그이는 참으로 참을성도 많고 여간해서 떼쓰고 보채는 일이 거의
없던 참으로 별종의 어린아이였던 듯 하다.
물론 뇌성마비로 전이될 그 시점에 황달을 심하게 앓던 생후 몇 개월까지
시어머님은 하루 밤 편하게 잠든 적이 없으셨다고 회고하신다.
영문도 모르고 애가 열을 펄펄 내면서 우는데, 약도 없고 한밤중에 애를 업고 병원을 뛰어가도 의사들이 어떤 처방을 못내리던 답답한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그후 그는 그렇게 심하게 운 적이 없었고, 늘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했다.
남편은 아마도 나와 결혼하지 않았아도 그다지 서럽거나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쓸쓸하거나 고독하게 여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비오는 날도
혼자 나다녔을 것이다.
비가 오면 맞고, 바람불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면서...
이 비가 지나가리라, 이 바람도 잠들것이다...하면서 말이다.
어린시절 그에게는 잊지못할 친구가 있다.
1972년 산으로 내 나이와 꼭같은 그이보다는 네살 어린 커다란 금성사 선풍기다.
그 선풍기는 보통 어른 어깨높이 정도되는 스탠드형이다.
32년이 지난 지금도 시댁에는 여름이면 그 선풍기가 나와서 거실과 주방을
잇는 복도에 서서 바람을 불어준다.
그이가 어릴 적 그 선풍기는, 늘 앉아있거나 기어다니는
꼬마 이 준수에게 더없는 선망의 대상이자 좋은 친구였던 듯
하다.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선풍기를 보고 있으면 너무 높은 키에도 압도 당했지만...
의젓하게 서서 내가 물리치료 운동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거나, 또 텔레비젼 볼 때에도 쉬지 않고 바람을
만들어 주고, 내 옆에 있어주어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나는 재밌는 만화를 텔레비젼으로 볼 때, 선풍기는 나 때문에
쉬지도 못하는 거잖아.'
참 어린아이의 맑은 발상이라 생각했다.
자기를 시원하게 해주느라 쉬지도 못한다...
더우기 집에 아무도 없는 때에는 그 선풍기 받침에 달랑
올라 앉아서 선풍기 기둥을 잡고 헬리콥터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고개를 들어 선풍기 날개를 바라보면서...
'이제 이 헬리콥터를 타고 여기저기 날아간다.'하면서
눈을 감고 정말 선풍기를 타고 날아가는 상상을 하면서.
그런데 재밌는 것은 항상 혼자 있을 때만 그런 놀이를
했을 뿐, 누가 집에 있을 땐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은 혼자 속으로 되뇌이고 생각하는데 너무나 익숙하다.
아무리 속상하고 기분 나뿐 일이 있어도 전혀 남한테 내색 안 하고 혼자 속으로 삭일 뿐이다.
그런 그가 나를 만나 떠들석하게 함께 지내는 동안 자기표현
자기 감정선을 나와 공유하는데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는것이다.
함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또 그 시간을 추억하면서
나는 문득...
아, 우린 이 시간이 이렇게 빛나고 있는 줄 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이 비오는 날, 외롭게 비맞고 다니지 말라고...
새로운 땅에 적응해서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 눈물짓지 말라고
우리 서로 그렇게 부부되어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혼자가 아닌, 함께 해 보라고 말이다.
어제 수업도 지도교수님의 칭찬으로 끝맺음 했다고 한다.
내가 교실로 남편을 데리러 갔을 때 마주쳤던 그 교수님은 극상의 예우로 나와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했다.
'난 이미 준수가 결혼을 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준수의 와이프를 보는 것은 첨이다.
너무나 반갑다. 정말 만나서 반갑다'
나또한 얼마나 영광인가?
우리는 초로록 비 오는 길을 따라 우산을 받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빗방울이 튀어다니는 걸 함께 바라보면서.
학교 연못, 잔디밭 어느 곳에도 비가 흠씬 젖어든 모습은
이제 나또한 서울이 아닌 이곳에서, 새롭게 뿌리내리고
있는 풀뿌리가 되어가는 느낌으로... 모든 것이
익숙하고 그렇게 처연히 아름답게 젖어드는 기분인 것이다.
하나님, 예수님의 마음이...우리 두 사람에게
천천히 아주 깊이깊이 스며오는 오후였다.
문현정 드림
김철민: 현정 자매, 글 너무나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사람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을 믿어요. 계속 아름다운 글을 남겨, 힘든 세상속에,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망은 전해 주세요. 김철민 장로
-[02/23-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