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죄 많은 여인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누어집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이후의 33년 동안의 그분의 일생과 가르침, 그리고 사도들의 활동을 기록해 놓은 책이고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시기까지 하나님이 당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축복하셨는지를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기록해 놓은 일종의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시대적, 상황적 배경과 함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왕, 솔로몬 임금 등의 예수그리스도의 직계 조상들의 활동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 가계의 2500여년 동안의 족보를 살펴 보면서 발견할 수 있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분의 조상들 거의 모두가 하나 같이 죄 많은 나약하고 초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경건하고 의연한 사람들도 몇몇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일생에 한번 쯤은 커다란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특히 다말 라합, 밧세바. 이 세 명의 여인들은 예수님 가계의 대표적 여자 조상들로서 이들 역시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통념상 용서 받을수 없는 커다란 죄를 저질렀습니다.
우선, '다말'이란 여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게 되어 후사를 이을수 없게 되자 어떻게 해서든지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욕심으로 창녀로 변장하여 술에 취한 시아버지를 유혹,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크게 노하셔서 이들을 당장 멸하시려고 하셨지만 이들이 죄를 회개하고 자비를 구하자 하나님은 이들을 용서하시고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들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도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라합' 이라는 여인도 신분이 기생이었습니다. 기생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소호', 고대 그리스어로는 '보르네'인데 아무 남자에게나 자기 몸을 내어주는 여인을 뜻합니다. 그 당시 사회 통념상 매춘 행위는 그다지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종교적 율법에서는 그것을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행위이며 사회에서 추방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허물 많은 창녀 라합까지도 당신의 위대한 사업에 쓰셨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왕의 충성스런 신하 '우리야'의 아내였는데, 그 뛰어난 미모로 다윗왕을 유혹하여 간음을 범하고 남편까지 죽게 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다윗왕의 왕궁 가까운 곳에서 매일 밤 목욕을 하여 이를 본 다윗왕이 흑심을 품어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에 내보내 죽게 하고 그녀를 후궁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이런 부도덕한 행위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죽게 하시고 다윗왕은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서 거의 쫓겨나게 하셨습니다. 이에 다윗왕이 수 백 일을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자 하나님은 이를 용서하시고 그를 다시 축복하셔서 이들 사이에 또 다른 아들을 태어나게 하사 솔로몬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이상의 세 여인의 경우처럼 성경에는 죄 많고 허물 많은 인물들이 무수히 나옵니다. 예수님은 아무 흠이 없으신 분이고 성경은 거룩한 구원의 책이라는데 왜 이리 못나고 추악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래 성경은 인간의 온갖 죄악과 위선과 교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책이며 이런 것들에 절대 수치스러워 함이 없이 하나님이 위대하신 사랑과 자비로서 모두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해 놓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겨지고 더럽혀진 돈을 은행에 갖고 가면 빳빳한 새 돈으로 바꿔주고 사고가 나서 심하게 찌그러진 차를 정비 공장에 맡겨 두면 보기 좋게 수리되어 나오듯이, 아무리 허물 많고 만신창이가 된 인생일지라도 일단 하나님 손에 맡겨지면 용서와 구원과 거듭남이란 과정을 통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고 방식과 영혼까지 싹 바뀐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고쳐진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가지 예를 통해 우리에게 강력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들 중에서도 허물 많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처럼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챤들 속에서도 흠이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고 교인들을 양육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목사님들도 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역시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크리스챤이라면 무조건 경건하고 올바라야만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허물에는 '무슨 교인이 저 따위야' 하며 몰아 붙이려고만 합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목사 사모가 옷을 잘 입으면 모양만 낸다고 험담하고 수수하게 입으면 촌스럽다고 수근거립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이간질하는 장로를 내보내야 한다고 하고, 술 먹는 사람이 권사에 임명 됐다고 난리 들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한 험담과 중상 모략들을 교회내에서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교회 역시 못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기에 험담이나 비방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 듯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권면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그가 (가시에)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 처형이라는)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습니다'
허물이나 죄가 없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억지로 흠이나 죄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멘.
이 준수 드림
이그레이스: 어떤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교회란 hotel이 아니고 hospital이라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건강한 사람, 의인을 부르러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 병자를 부르러 오신 주님이시라고 하셨지요.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준수 형제님 안녕하시지요? -[05/3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