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9주년에 민족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며....
백범 김구 선생의 일생은 그 자체가 파란만장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한다. 19세기 후반 질풍노도와 같은 격동의 시기에 태어난 김구는 청소년 시절부터 반외세 구국운동에 뛰어들었고 일제가 한국을 강점했던 암흑의 시기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으며, 특히 3.1운동 이후에는 온갖 고초와 역경을 뚫고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민족의 자존과 민주주의 체제의 정통성을 지켰왔던 것이다. 또한 광복 이후에는 우리 민족 자신에 의한 민족의 자주 통일과 완전한 독립 정부의 수립을 위해 전력투구하다가 비극적으로 그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서거는 그 자신의 비극이기에 앞서 바로 민족 전체의 아픔이요 수치였다. 그의 비극적 서거는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있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의 서거는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주도 세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수많은 항일애국지사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는 투쟁에서 온갖 고초를 당한 끝에 순국하였으며, 다행히 살아서 광복을 맞이한 인사들도 민족 분단과 권력투쟁과 좌우익 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 상황하에서 그 노고를 보상받지 못한 채 잊혀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정 당국은 남한의 사회체제 관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이유로 일제식민통치의 앞잡이였던 경찰, 법조인, 교육자, 기업인, 행정관리, 언론인, 문화인 등등의 친일세력을 다시 채용하여 군정 체제의 하부조직으로 충원하였고, 이에 이들 민족 반역 세력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강력한 기득권, 지배 세력으로 재등장 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해서 반공이라는 명분하에 친일 세력의 숙정을 소극적으로 하더니 드디어 민족 반역자들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였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 또 하나의 비극의 씨앗을 잉태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승만에 의한 친일세력의 정치적 충원은 그 이후 한국 정치 체제의 '정통성의 위기'의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친일 세력의 재등장은 '남조선 해방' 이라는 기치하에 북한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을 열정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정통성과 도덕성을 지닌 지도자는 오직 김구 선생 뿐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의 서거는 분단된 조국을 주도적으로 재통합할 수 있는 민족적 양심을 가진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애국적 세력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김구는 민족 분단과 남,북 단독 정권의 수립이 기정 사실화 된 l948년 2월 l3일에 발표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한다」는 성명서에서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3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라는 확고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는 정권과 이념을 초월하여 민족 통일 문제에 순수하게 접근하였으니. 비록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 문제는 한국인 스스로에 의해서 풀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대북접촉을 과감히 시도하고 단독정부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구의 그러한 통일을 향한 신념과 대북접촉이 공산주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순진한 노력이라고 비관하는 소리도 컸고, 실제로 그의 제l차 대북접촉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항일독립운동과정에서도 이념적 갈등을 심각하게 경험한 그가 좌익 공산주의의 본질을 간과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는 좌우익 정치 노선의 통합이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민족적 양심에 따라 조국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것이며, 만약 그가 더 오래 생존했다면 민족 통일을 향한 또 다른 대안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천하였을 것이다
세째로, 김구의 서거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폭넓은 국민적지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민주적 지도자가 상실되었음을 뜻한다. 한국 헌정사에 있어서 비록 망명정부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은 봉건적 군주정치체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근대적 민주 정치체제가 수립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상해로부터 중경(重慶)에 이르기까지의 망명지에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한국 역사상 최초로 공화정을 표방하면서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다. 이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정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한국현대정치사에서 그 정통성(正統性)을 확고하게 보장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김구 선생이야말로 이후 역대 대통령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투철한 민주적 리더쉽을 지녔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민족공동체를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운영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지도자였으며, 이러한 배경이 그로 하여금 결코 독단적 카리스마에 의한 지도자가 될 수 없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가 항일독립운동 과정에서 비밀결사적 성격을 가진 조직 활동이나 테러리즘을 이용하였다고 해서 그를 반민주적 지도자로 비판하는 견해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항일투쟁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그가 오래 생존했더라면 이승만의 권위주의적 독재 정치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발전에 기여하였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렇게 김구 선생은 식민지 유산의 청산문제, 민족분단의 극복문제, 그리고 민주적 체재운영 문제에 있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지도자였다. 따라서 그의 비극적 서거는 엄청난 민족적 손실이었으며 곧 민족의 수치였다. 그렇지만 광복 59년이 되는 오늘에 있어 그의 이러한 조국과 민족을 향한 헌신적 열정과 사상 체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더 이상 역사적 오류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김구의 사상 체계가 서있는 기초는 정치적 리더쉽에 있어서의 고도의 도덕성이다. 이 도덕성을 지닌 정치적 리더쉽이 민족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면서 민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드디어 높은 문명의 수준을 누리는 문화적 대국을 건설하는 것이 김구의 원대한 이상이었다. 백범 김구는 높은 도덕성을 가진 민족적, 민주적 지도자로서 민족의 영원한 큰 스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백범 어록>
-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 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 밖에 없다. 내 과거의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는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찌기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된다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라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려있 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에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일개인에서 오는 것을 전재 또는 독재라 하고 일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지식의 정도를 그만큼이나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친애하는 자매형제여! 우리의 살 길은 자주 독립의 한 길뿐이다 이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여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 가지는 못하는 길이다. 주저하지도 말고 유혹 받지도 말고 앞만 향하여 매진하자. 내가 비록 불초할 지라도 이 길을 개척하고 나가는데는 앞에서 나갈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하나님께 빌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보고 죽게하소서 하고.
- 누가 묻기를 어떻게 죽기를 원하느냐 한다면 나의 최대 욕심은 독립 성공 후에 본국에 돌아가 입성식을 하고 죽는 것이나 작게는 미주 하와이 동포들을 만나고 돌아오다가 비행기 안에서 죽으면 시체를 내던져달라는 것이다.
-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 밖에는 쓸데가 없습니다.' 나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군은 차창 밖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일 때 자동차는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떠나갔다.
-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 나의 유일한 최고의 염원은 조국의 자주적 민주적 통일뿐이다. 소련식의 사회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공산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다 해도 독점자본주의로 무산자를 괴롭힐 뿐 아니라 낙후한 국가를 자기 상품시장화하는데는 찬성할 수 없다.
백범 김구 선생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 만큼이라도 나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이 준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