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구약성경 하박국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온갖 악행이 난무하는 조국 유다. 그런 쇠약해져가는 유다를 호시탐탐 노리며 괴롭히고 있는 이웃의 강대국 바벨론, 그리고 의인이 고난당하고 악인이 번성하는 불의한 정치, 사회적 현실을 비관하며 여호와께 안타깝게 부르짖었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들려주셨던 간략하고도 확신에 찬 명쾌한 응답이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 학문의 시작을 앞두고 요 며칠동안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중에 나는 이러한 하박국 선지자의 안타까운 회의와 고뇌를 현재의 나의 상황에 적용시키며 이 말씀을 올해의 나의 신앙과 인생의 지표로 설정해 보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의 의미는 세상적인 뜻과는 좀 다르다. 세상에서는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윤리적이며 정의로운 일을 한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사람을 의롭다고 한다. 비록 지은 죄가 많고 인간적으로 연약하지만 오직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 분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려고 하는 이에게 주님은 의인이란 칭호를 주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의인은 세상에서도 경건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의인은 하나님이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지만 그의 삶에도 고난과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생을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역경과 고통이 따른다. 바로 그를 둘러싼 세상은 교만하고 사악해서 경건한 그를 핍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교만하고 사악한 자가 떵떵거리며 잘 사는게 세상의 이치다. 하박국 선지자의 의문과 회의도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다. 그는 '공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분명히 계실진데 왜 의인은 고난받고 악인은 번성하며, 조국 유다가 그보다 더 악한 바벨론에게 심판받아야 하는가' 라고 하나님께 안타깝게 항변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런 불의한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며 비록 더딜지라도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라고 응답하셨다. 그리고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라고 말씀하셨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즉 아무리 주변 환경이 불리하고 고통과 역경으로 가득 찼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용서와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오직 그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다 라는 뜻이다. 비록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외부적 요소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 것에 반응하는 자신의 관점과 대응 자세가 변화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항거해 나간다는 말이다. 결국 주변 환경이 어쩌니 저쩌니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너부터 변하라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하박국 선지자 뿐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 경험한 것이었다. 고린도후서 12장의 말씀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크게 괴롭히고 있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라고 말씀하시며 바울에게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셨다. 이에 바울은 그가 하나님께 받은 엄청난 계시와 사랑에 대해 교만하지 말라는 뜻으로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이라고 깨닫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영원히 머무르게 하기 위해 그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약점들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순교할 때까지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겪어야 했던 모든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기뻐했다. 그것은 그에게도 역시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해진다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다고 하는 강력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후일 마틴 루터와 요한 웨슬리에게도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어 그들이 타락하고 부패한 기성 종교를 타파하고 새로운 신앙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하였다.
나 역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실감나게 경험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뇌성마비 장애로 인해 지난 33년 동안 고난과 시련을 무수히 겪었으며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안타깝게 항변하며 부르짖어 왔다.
'하나님, 나를 왜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왜 이런 고통과 수치와 굴욕을 당하게 하시나요...' '이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믿으며 열심히 올바르게 살아왔는데 왜 자꾸 이런 좌절과 아픔을 계속 겪어야만 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은 모든 일이 쉽게 잘 풀리는데 나는 왜 이리 지지리도 안 되는 겁니까...'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항의할 때마다 하나님은 욥에게 하셨던 말씀을 나에게도 들려주시며 질책하시고 회개케 하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욥기 38:4-8>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뇌성마비 장애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그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귀하게 쓰시며 이렇게 미국 유학까지 하도록 허락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비록 아프고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훨씬 많았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오신 부모님, 귀여운 동생들, 소중한 친구들, 귀한 나의 아내, 그리고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 나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분이 지금까지도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듯이 앞으로도 나와 함께 동행하실 것인데 내가 무엇을 원망하며 안타까워 할 것인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리고 마틴 루터처럼 나도 오직 믿음으로 사는 수밖에....
나는 지난 98년 내 30회 생일을 맞아 쓴 '나의 30년'이란 글에서 '나의 운명적 한계로 인해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영원히 나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떠한 좌절감이나 패배감 없이 당당하고 의연한 삶을 살겠다' 라고 분명히 말했다. 사실 이런 각오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직 젊은 나로서는 비참한 일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박해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각자의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정말 내가 죽기 전에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있는 모든 불신과 미움의 장벽이 무너지고 장애인들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자유로이 이루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회에서 단 하루라도 살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자유와 해방의 시대를 열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세상의 도래가 약간 지체되어 내가 이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더라도 나는 결코 안타까워하지 않겠다. 지난 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군사 독재에 저항하여, 만주 벌판에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또 안기부 지하 고문실에서 민족의 독립과 조국의 민주화를 꿈꾸며 죽어 간 수 많은 애국지사들처럼 나 또한 내가 400만 한국 장애인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며 노력한 사실 하나에 만족하며 자랑스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며, 그런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도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을 의연하고 당당하며 시원스럽게 살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이준수 드림
이그레이스: 준수님 안녕하세요? we missssss uuuuuuuuuuuuuuuu... -[09/27-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