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동 남편, 흥부! (25-26)
서명희
[감자탕교회 이야기]www.sls.or.kr/ 에 들어오셔서,오른쪽 '세계속의
광염'난의 아래에서 두번 째,'흥부아내 서명희'방에 초대해요! 감사드리며~
25. 당신, 연기 하지마!
제가 종종 그랬지요.
"당신, 연기하지마!"
나의 남편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입니다.
학부때는 연기, 석사과정은 연출을 전공한.
지금은 헝가리 선교사로, 교회 목사, 선교단체 간사(CCC)이기도 합니다.
이글을 쓰면서도 먼저 웃음이 나옵니다. 자꾸.
그렇게 나의 남편은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짓게 하는, 그런 사람이죠.
본인 말로는 그런 엉뚱한 유우머가, 전혀 전공과 상관없다고는 하지만,
그쪽 물을 먹은 사람인데 싶다가도, 천성이구나 싶어요.
한번은 한국방문 중에 동창회 모임이 있어 저도 함께 갔지요.
들어가는 입구에서 '동국대 연영과 동창생 주소록 수첩'을 나눠줬는데,
19기 명단, 김흥근 난에, 뭐라 적혀 있었는지 아세요? 풋.풋.
한자어로, -他 界 (타계)-
기수별 테이블에 갔더니, 동창들이 연발, "세상에 너가 살아있었구나!"
여자들도 껴안고 난리였어요. 너무 반갑다고, 하도 오래간만에 봐서.
주변에는 아는 연예인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 사실을 알게된 사회자는 저희 부부를 앞으로 불러냈어요.
죄송하다고 해명을 하고, 특별 소개 순서를 마련해준 것입니다.
앞으로 나간 남편은 마이크 앞에서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나중에, 어떤 연예인은 저희들 앞에서 그래요.
"?사실 교회 집사야, 잡사(?)긴 하지만 말야!"
또 지금 KBS의 엄기백 PD 선배님을 만났는데, 그가 물으셨습니다.
"흥근아, 너 그때 별명 기억나?"
나의 남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는 사람이라 기억 잘 못해요.
그당시, [핑크빛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을 땐데
연습 후 6명이 너무 배고파 식당엘 갔대요.
밥공기 24개를 비우고, 물을 달라고 했더니
식당아주머니께서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왔더래요.
그때 밥을 가장 많이 먹은 흥근은, 기어이 별명 하나 얻고 말았답니다.
"밥근아~"
나의 남편은 지금도 이렇게 고백해요.
"내가 전공한 연극이 지금 나의 삶과 전혀 무관한 것같아도, 아냐!
선교사로, 목사로, 대학생선교회 간사로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내가 배우고 연기했던 그 많은 역할과 배역이, 지금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더욱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거야."
아마, "상대배역 중 가장 어려웠던 사람은?" 하고 그에게 묻는다면,
바로바로, 서명희! 그의 아내인 저 일 것같습니다. ^J^*)))
"맞아요? 여보~"
26. 손들엇!
연기자들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예! '주연'을 맡는 거죠.
제 남편, 김흥근도 동국대 연영과 대학시절 때 그 꿈이 있었대요.
좀처럼 주연맡기가 어려웠죠. 주로 떠꺼리(이건 헝가리어로도 청소임)?
그러다가 드디어 대학 3년 때 주연을 맡게 되었대요.
그것도, 사극으로. 김옥균 스토리 였다나요?
'아~ 그런데... 그 날!'
하여튼 너무나 고대하던 주연을 맡아, 무지무지 열심히 연습했대요.
막이 오를 날짜가 임박해오자, 다른 연기자들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
가도, 혼자 남아서 꼬박 밤을 새며 실제처럼 대사를 외고 연기 했대요.
그날 밤도 혼자 남아 무대를 왔다갔다 하며 연습에 푹 빠져있는데,
갑. 자. 기. "손 들엇!"
총부리가 그의 머리를 겨누며, 벽으로 밀고 가, 팔을 머리 뒤로
깍지 지게 한 채 무릎 꿇렸습니다. 밤새, 꼬박.
무슨 영문인 지도 모른 채, '이제 죽었구나! 안돼...' 생각했대요.
다행히 아무런 낌새, 즉 운동권 학생 같지 않자, 새벽에 풀어줬대요.
남산 안기부와 가까이 있던 동국대 캠퍼스, 5.18항쟁(1980 년) 광주
항쟁의 날 이었지요.
모든 대학이 휴교에 들어가면서 자연 공연도 취소되어 버렸으니
낙심과 좌절, 어떠했겠습니까? 집에 틀어박혀 몸부림 쳤을 것 아닙니까?
얼마가 지나서 선배로부터 호출이 있어 억지로 나갔답니다.
"나 대신 너가 가! 내 친구가 나위해 회비를 내준 건데."
그것은 '한국대학생 선교회' 여름수련회 등록증 같은 것 이었어요.
그때가 1980년, 여의도에서 '세계복음화대회'가 함께 열렸을 때죠.
억지로 그곳에 참석해, 연극이 사라진 억울한 마음 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날 밤, 집회 때, 그만 손을 들고 일어났대요.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선교위해 살 사람 일어나시오!" 할 때.
그 날 밤도 무릎 꿇었답니다. 밤새, 꼬박.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인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통곡, 회개하며.
그때 저도 그 자리에 서있었던 사람 입니다.
그를 만나기도 2년 전인, 대학 4년 때 였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교생실습(in 동아중)을 마치고, 교육순장으로 갔었지요.
아무튼, 올 12월이면 우린 결혼 20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당시 그가 저보다 학년이 낮았다구요?
그렇습니다. 둘 다 재수 출신 이지만, 그는 58년 개띠구요,
전 그보다 15....일? 년? 달! 예, 십 오 개월 연상 이지요. ^O^ (O is older.)
지금 그는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냐구요?
그는 꿈도 잊어버리기 일쑤인 사람인데, 그 꿈 잊지 못한다며 그래요.
"아~ 얼마나 많은 헝가리인들이 우리 교회로 들어오는지!"
그렇다면, 그의 아내인 전, 어떤 소원 가지고 있냐구요?
"그 꿈 이루어져~" 그 찬송가 있잖아요.
그의(His & his) 꿈 이루어지는 것이, 저의 소원 입니다.
"여보! 당신 언제 또 손들게 될 날 있을까요?"
부다페스트에서, 흥부(거꾸로하면 부흥, 김흥근)목사의 서명희 나눔.
*사진은, 스틴터들이 기숙사로 이사간 것을 기념하여, 함께 중국식당에서(9월10일)~
파일: [
stint.Sep.10_008.jpg (144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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