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당신을 만나 나의 영혼이 푸르렀던 날,
나의 자아가 떨리고 한 송이 예쁜 목련이 피던 날,
투명한 유리벽에 반사되어 날개를 달고 피어오르는 영상시에 대해 감격하던 날,
푸른 나뭇잎 위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는 바람이 되어 그대의 웃음 옆에 가지런히 서 있던 날,
나는 문을 밀치고 나와 연두빛 들판에 서서 피어나는 사랑의 언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Last Concert 의 테마 음악이 하얗게 날리는 배꽃 무리 속에서 천천히 울려 퍼지는 환상을 보기도 하고,
솔베이지 송의 부드러운 선율에 사르르 잠이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쪽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보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새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떨쳐 버릴려고 해도
나의 심연 깊숙이 와 닿는 슬픈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이 나로 인하여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세레나데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조건들에 대하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픔이기도 합니다.
강이 있고 늪이 있고 사막이 있고 깊은 골짜기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절박감이기도 합니다.

당신을 만나 나의 영혼이 푸르렀던 날이 생각납니다.
나는 한마리 새처럼 하늘을 날아 다녔습니다.
나는 잠자리와 친구가 되고 까치 둥우리와 친해졌습니다.
나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내가 있던 그 곳이 아주 작고 초라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빠알가니 꽃이 피어 있는 정원에서,
소로록 낮잠 자는 양들 곁에서,
나의 영혼이 얼마나 푸르렀는지 아시나요?
당신이 있었으므로, 당신을 만남으로 하여 내 얼마나 싱싱하고 푸르른 삶을 살 수 있었는지 당신은 알고 계시는가요?
그러나 곧 나는 시무룩해집니다.
만남 뒤의 허탈함이 그러하고 전화통화 후의 아쉬움이 그러하듯이 나는 곧 당신을 좀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거라는 자책감에 빠집니다.

푸른 나뭇잎 위의 반짝이는 이슬이 되어 새들의 반지가 되고
목걸이가 되고 하늘가에 가 닿는 보석이 되고 싶지만,
내 눈물에는 불순물이 많아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괴로워 하게 되는 이 마음....

사랑하는 이여,
내 당신을 아주 행복하게 못해준다 해도 당신의 미소 옆에서,
때로는 눈물 곁에서
당신을 받쳐주는 악기 하나로 만족하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곡을 당신이 원하는 순간까지....

<1989. 12.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 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