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에 교회 집사님들이 김해공항에 나오셔서 울며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 기범아, 너는 가면 언제 돌아올꺼니?"
만 여덟살 어린아이 입에서 나온 철없는 대답은,
" 우리 아빠 죽으면 한국에 돌아올꺼예요."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권OO 선교사입니다. 자신의 뼈를 중국 땅에 묻고자 하는 다짐으로 1990년 10월달에 부산 덕천교회 파송으로 자유중국 대만으로 온 가족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계획은 대만에서 언어 훈련을 3년정도 하시고, 중국 땅으로 들어가 사역하는 것이였습니다.
대만에서 현지인 하 목사님과 함께 대북에서 사광교회를 섬기시며 대만 사범대학에서 언어 공부를 하시는 중 약 일년이 지나 파송교회인 덕천교회 담임 목사님이 바뀜으로 인해 선교비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으니 모든 활동들을 중단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족은 기도가운데 부산 광안 교회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당시 포르투칼 영토인 마카오라는 중국 땅으로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2년 2월 24일, 마카오 땅을 밟아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지 두 교회와 마약 회복자 사역, 교도소 사역등을 마카오에서 하고 계십니다. 또한 마카오 땅이 중국과 붙어 있기에 중국 출입을 자주하시며 현지 전도사님들과 지하교회 사역자들을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훈련시키시며 신학적 자료들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중국 현지 공장 사역과 마카오에 있는 의사들과 함께 의료 사역을 하시며, 일년에 몇 번씩 중국 서부에 있는 소수민족(유구족)들을 찾아가셔서 전도 사역을 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귀한 사역을 하는 가정에서 외동으로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새로운 언어와 문화로 힘들게 했던 부모님이 싫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끝없는 기도로 인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압력으로 단기선교팀들의 통역을 많이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었기에 그저 힘든 일로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1996년 여름, 홍콩에서 CCC대학생 여름 단기 선교사역에 안산지구 팀 통역을 맡은 저는 단기선교팀과 2주 동안 같이 생활하며 통역하던 중 하나님의 사랑을 선교팀 단원들로부터 보게 되었고, 사역기간 동안 제 입으로 회개 기도를 드리며 예수님을 나의 부모님의 주인이 아닌, 내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중, 고등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는 제가 한국 한동대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미국을 보여주셨고, 지금 미국 가주주립대학 Northridge에서 International
Business 를 전공,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저에게 한국어,
영어, 중국어(북경어와 광동어)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할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제 비젼은 내게 주신 은사로 세계 각국에 선교사님들을 보내고 섬기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의 현장에서의 고통과 필요를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는 저는, 보내는 선교사로 기도와 후원으로 참여하고, 또 단기선교에 참여하고 현장에 선교사님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 비젼과 달리 만약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선교지를 보여주시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한
전도사님의 간증을 통해 갖게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예수사랑 선교교회에서 금요 중,고,대학부 찬양 리드와 주일 대예배 찬양팀 베이시스트 그리고 성가대로 섬기고 훈련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