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기적과 생수말씀 씨리즈 중에서 발췌
● 요4:46-54
생명은 저절로 흘러 넘치게끔 되어있고 그럴 때에만 기적의 효과가 있습니다
요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요 4: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 4: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요 4: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 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요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요 4: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요 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요2:1-11) 가나 혼인 잔치에 가시니까 포도주가 모자랐지요 누구 누구가 그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었나요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와 그 제자들이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라니까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고 예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왜 여자여 라고 합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앞뒤를 몰라서 여자여 하고 불렀을까요 그 앞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어머니라고 분명히 밝혀 놓았는데 그 어머니에게 여자여 라고 불렀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라 할 때에는 예수께서 그 어머니 모태에 있을 때를 말합니다. 율법 시대에 율법 안에 성자가 있지요 율법 시대에도 성자 예수는 있었습니다.
율법 시대를 말씀하실 때에는 예수의 어머니이고 여자가 되면은 예수를 낳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왔으면 이제부터는 복음 시대이지요 복음 시대라면 율법이 복음에 따라야 할 것입니까? 율법이 복음을 명령할 것
입니까? 옛날에 어머니가 뱃 속에 예수를 안고 있을 때에는 어머니가 가면 뱃속에 있는 예수도 따라가야지요 그것은 율법 시대이고 이제는 예수가 나왔으니까 아들의 뜻에 어머니가 따라야 옳습니까? 어머니가 또 아들을 계속 주관해야 됩니까?
바로 복음 시대와 율법 시대를 여기서 구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여 하는 이 여자는 율법 시대는 지나고 복음 시대가 이르렀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여자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복음이 생명화가 되어 흘러 넘쳐야만 하는 시기입니다
(요19:26) 십자가 곁에 예수의 어머니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 때에도 그 어머니에게 또 여자여 불렀습니다.
요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왜 여자여 라고 했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 갈 때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내 아들 예수가 십자가 지고 올라가는 그 곳까지 따라왔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혀 놓으니까 그 어머니가 누구로 인해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습니까? 예수로 인해서 구원받은 여자이지요 그 사실을 밝혀 주시기 위해서 여자여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을 잘 구별해서 보아야 됩니다. 그러면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묶은 포도주가 없다는 말이지요 율법 시대에 행한 대로 주시는 세상의 축복의 때는 지났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신 기쁨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케 하실 새 포도주 주실 때가 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지금 포도주가 없다고 했지요 그런데 지금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들 중에서도 새 포도주 구하고 있습니까?
묵은 포도주 구하고 있습니까?
묵은 포도주는 없다고 하셨는데 없는 걸 자꾸 구하는 자들이 있으니까 포도주가 모자라고 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는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였는데 모자란다고 한 것을 보니까 아직도 묵은 포도주를 구하는 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인들에게 두 세 통 되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했는데 어디 가서 물을 길어다가 채우라 하셨나요 없지요 하인들이 채우기는 채웠는데 어디서 물을 갖다 채웠을까요,
(요4:14) 생수의 근원 되는 예수께서 내가 여기 있으니까 내가 주는 생수로 그 통을 채우라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생수는 두레박 가지고 길어야 되나요 어떻게 받아야 되나요 그 생수는 어떤 방법으로 주십니까? 말씀을 통해서 예수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생수의 말씀을 채우라는 말입니다.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라고 하셨는데 우리 사람들은 성경을 제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두통 세 통 짜리 밖에 안 됩니다.
바다 물도 헤아릴 수가 없지만은 하늘 위에를 보면 하늘에 물이 몇 통이나 될 것 같습니까? 아무도 모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도 요한이 많이 안다고 해도 21장 끝에 내가 본 것을 다 기록하면 책을 온 천하에 다 쌓아 놓아도 모자랍니다.
요 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그 만큼 아는 사도 요한도 자기 자신이 두 세 통 짜리 밖에 안 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말씀했지요 물로 포도주 만든 곳에 있었으면 그 포도주
를 만드는 구경만 했다는 말씀입니까? 그 포도주를 마신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그 포도주를 마신 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병 들릴 수가 있느니라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는데 4장에 가면 사마리아 여인이 야곱에 우물에 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지요 그런데 그가 돌아 갈 때에는 물동이 가지고 갔나요 버려 두고 갔나요 물동이를 가지고 왔다가 물동이까지 버려 두고 갔습니다.
왜 물동이를 버려 두고 갔을까요 내 몸이 물 그릇 되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생수를 받아 먹었는데 이제 물동이가 무슨 필요 있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물동이 끼고 다니는 사람들 있습니다.=우물가 신앙(생수 신앙은 말씀을 들은후에 내속에서 소화 된다면 생명이 내 배에서 넘쳐나게 되어 있음)
말씀을 주시면 물동이에 담아 가지고 갑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내 속에 역사 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하지요 받아 먹어야지요 오늘 본문 말씀에 왕의 신하가 그 아들이 병든 것을 보고 예수님 하고 같이 가자고 했지요 같이 가자는 것은 안수해서 병을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민11:1)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고 했지요 하나님께서 만나는 아침에 주십니다.
아침에 주셨으니까 자꾸 밝아 오지요 그런데 만나는 아침마다 먹으면서도 정력이 약하도다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 먹었습니까 안 먹었으니까 정력이 약하다 영력은 알지도 못합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때에 반드시 이루시고 계시는 역사가 함께 하십니다.
정력이 약해졌다고 하면서 고기를 구하고 있었지요(민11:31) 그 때에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시기는 주셨는데 메추라기를 보내시는데 두 규빗쯤 위로 무리를 지어 날아오게 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무릎을 끊고 앉으면 두 규빗 밖에 안됩니다. 무릎 끊고 앉은 두 규빗쯤으로 메추라기 떼가 날아 올 때에 손으로 잡으면 두 마리밖에 못 잡지요 오래간만에 고기 먹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많이 잡을까요 자꾸 내려치
면 다 죽어서 지면에 떨어질 것이고 그 때에 거두어야지요,
(민11:32)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가 십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말씀하셨는데 안수하는데 가보세요 안수 받겠다고 무릎 끊고 앉으면 두 규빗이지요 안수하
는 사람 두드리고 다니는데 그것이 메추라기 잡는 것이지요 그런데 메추라기 잡는 사람이 한 시간 잡았다고 하셨나요 종일 종야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새우고 그 다음 하루 쉬지도 않고 그 이튿날에 또 합니다.
열심히들 합니다. 철야도 하고 불벼락이 났지요 만나 거두어 올때는 하루에 한 호멜이고 메추라기는 조금 잡은 사람이 십호멜입니다.
신바람 나게 잡았습니다. 그것을 갖다 많이 잡은 것 자랑하려고 진 사면에 펴놓았습니다. 안수하는 분들 가보세요 신유 은사 받은 분들 조심들 해야 합니다.
무슨 병들을 그렇게 많이 아는지 내가 어디 가서는 무슨 병도 고쳤고 어디 가서는 무슨 병도 고쳤고 그것을 자랑하며 떠들고 다닙니다.
어디 가서 무슨 병 고쳐 준 것 써 가지고 다니지 말고 오늘 자기 앞에 있는 환자 고쳐 주면 될 거 아니냔 말입니다. 그것이 죽은 메추라기 진 사면에 펴놓는 것입니다.
메추라기는 귀머거리입니다. 안수 받기 좋아하는 사람들 말씀 들으려고 안합니다. 귀머거리들 만들어 놓습니다. 안수나 받으라고 하면 몰려드는데 말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말씀 전하면 잠들만 자고 있습니다.
안 들리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자야지요, (시106: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11:34)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에 장사했다 말씀했지요 탐욕이 뭡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만나를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게 먹었으면 믿음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셨을 것인데 하나님
의 뜻보다 세상을 보는 자기의 뜻을 앞세우는 탐욕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메추라기를 구하는 자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안수 받기 시작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도록 귀머거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안수하기전에는 생수 말씀이 필수입니다
난로에다가 불을 때면 뜨거워집니까? 안 뜨거워집니까? 불을 때면서 뜨거워지지 말아라 하면은 안 뜨거워지나요 마땅히 뜨거워지지요 예수 의 사랑이 내게 충만 한데야 내가 어떻게 사랑을 안 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사랑하라고 자꾸 야단치니 사랑이 나올까요 사람의 생각으로 해 보았자 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뭐 조금해 놓고 내가 했다고 떠들 사람들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 충만해서 넘쳐 날 때에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역사 하는 것이지 내게서 난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안수 할때는 넘쳐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안수해야 하고 그 때에 내속의 예수 생명이 나눠지게 되는 겁니다.
(삿16:37) 삼손을 잡아다 놓고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는 집에 남녀가 가득했지요 그런데 지붕에는 남녀가 3천명 가량이라 그러면 기드온의 용사는 3백 명이고 지붕에 있는 남녀는 3천명이고 몇 배가되나요 자그마치 열 배가 되고 있습니다.
삼손은 머리털이 길었다 말씀하시는데 머리털은 지혜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은사는 말씀으로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리는 세계를 말합니다.
삼손은 지금 하나님의 지혜의 은사를 가지고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하시고 계시는데 지붕에 올라가 있는 남녀 3천명은 나는 방언 하는데 나는 안수해서 병도 고쳤는데 말씀의 은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위치를 바로 보아야지요 (고전14:40) 은사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그 아래 내려가면서 방언 은사까지 나오지요 그 질서대로 순서대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무슨 은사를 받았던지 그 자리에서 역사 할 줄을 알아야지 그 범위를 넘어가면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민12:5-10)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문둥병을 주시는 교훈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신24:9) 은사 있다고 말씀 전하시는 주의 종들보다 앞서면 안되겠습니다.
(눅1:25) 보면 엘리사벳이라는 여자가 젊어서도 애를 낳지 못했는데 다 늙은 다음에 세례요한을 잉태하게 했습니다.
마리아는 처녀로 잉태했는데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셨고 엘리사벳도 늙었고 사가랴도 늙었지만 그 때까지 늙어서 잠자리를 같이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잠자리 같이 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셔서 요한을 잉태하게 했습니다.
그랬는데 이 늙은 엘리사벳이 잉태한 것을 자기는 알았습니다. 늙어서 처음으로 애를 한 번 잉태해 보니까 얼마나 기쁠까요 밖에 나가서 나 잉태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아들 주셨다 떠들고 싶겠지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
나요 산중에 가서 다섯 달 동안 숨어 있게 하셨습니다.
이게 은사 받은 분들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여태까지 아이를 못 낳고 있다가 늙어 가지고 아기 가졌다고 떠들면 사람들이 저 여자 이젠 미쳤다고 그 말을 누가 바로 듣겠습니까? 다섯 달 동안 산중에 가서 가만히 숨어 있으면
은 배가 부르게 됩니다.
내가 아이 가졌다고 안 해도 다른 사람이 보고 아이 가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은사 받았다고 떠들지 말고 내 속에 있는 은사의 역사로 나타나져야 한단 말입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지요 그러면 은사적으로 볼 때에 세례 요한을 잉태하게 한 엘리사벳과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누구의 은사가 더 좋은 은사일까요 그건 마리아의 은사가 더 좋은 은사이지요,
그러면 네가 좋은 은사를 받았으니 먼저 받은 엘리사벳에게 가서 가르쳐 주라고 하지 않고 먼저 은사를 받은 엘리사벳에게 가서 은사 받은 자의 생활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도 급히 산중에 가서 먼저 은사를 받은 엘리사벳에게서 석 달 동안 교육받았습니다. 이것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왜 갈릴리 가나를 여기서 말씀하시며 물로 포도주 만드신 곳이라는 것을 여기서 밝히고 있습니까? 물로 된 포도주를 마신 자들 가운데서도 이와같은 병든 자가 있을 수 있느니라 모든 사람이 다 병든다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암5:3) 천명이 나가던 성 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 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미리 말씀해 놓았습니다. 생수 말씀과 과 신유은사가 없으니 사람이 줄고 있는 교회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중에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암5:3)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자녀들이 육신의 병이 들면 그것은 빨리 아는데 교인이 병든 것은 압니까? 모릅니까? 내가 온전한 믿음에 섰다면 볼 수 있지만은 내가 병들면 그 병든 것을 병든 것으로 보지 못하고 도리어 자랑하고 칭찬하게 되
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의 신하는 자기 아들이 육신의 병든 것은 보는데 자기 잘 못으로 인해서 자기 아들이 병들었고 교인들이 병든 것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왜 병들게 했느냐 자기 아들의 병을 통해서 그것을 그냥 두면 다 죽겠으니까 자기와 교인들이 병든 것을 보게 하시고 그 죽음에서 살리시기 위해서 그 육신의 아들을 병들게 하셔서 이 일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47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말씀의 은사를 받았으나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보려고 가버나움에 내려간 왕의 신하를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된 포도주를 받아 먹은 자들을 다시 찾아오십니다.
-말씀 생수 체험 후에는 다시 신유 기적으로 확신을 시킬 때에 온전한 신앙의 은사자(왕)이 됩니다-
왜 찾아오십니까? 그들 가운데서 병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들 한데 그 생수까지 주었는데 병들었다고 야단치러 오십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 그 생수를 주셨을 때에 이루시고자 하신 바 그 뜻을 기어코 이루시기 위해서 또 찾아오십니까?
먼저 새 포도주를 주신 것도 주님의 특별한 은혜이고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으니까 너는 비록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서 병들었을지라도 또 교인들을 병들게 만들었을지라도 나는 너를 고쳐 다시 새롭게 해 주실 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완벽하신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삼하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예수님께서 보시니 왕의 신하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가버나움에 내려가 있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보고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자기 아들이 병든 것만 보지만 예수님은 온 교회가 병든 것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자기 아들이 병든 것만 보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능력과 많은 병자를 고치신 그 능력으로 내 아들의 육신의 병 고침을 받겠다고 병 잘 고쳐 주시는 그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그러면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육신이 병든 자기 아들의 병만 보는 왕의 신하는 예수님 빨리 내려와서 안수해서 내 아들의 육신의 병 고쳐 달라고 구하고 있는 것이 가버나움에 내려간 신앙입니다.
온 교인들이 병든 것은 모르고 자기 아들의 육신이 병든 것만 보고 내려와서 안수해서 병 고쳐 주시옵소서 하고 있습니다.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왕의 신하가 볼 때에는 자기 아들의 병이 중해서 거의 죽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영의 세계에서 볼 때에는 모든 교인들이 거의 죽게 되었고, 내 버려 두면 아주 죽어 버리고 맙니다. 자기 아들이 거의 죽게 된 것은 보고 온 교회
교인들이 거의 죽게 된 것은아직은 모릅니다.
자기 하나 때문에 거의 죽게 된 것을 보고 예수님 한테 간 그 왕의 신하가 예수님 보고 빨리 가자고 어지간히 독촉했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의 영이 병든 것을 보았다면 그 예수님께서 내게 빨리 찾아오시는 것을 보게 될까요 못 보게 될까요 왜요 내가 그 영이 병든 것을 내가 알았습니까?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기 위해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까?
깨닫게 하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빨리 오시겠느냐 하는 것도 보아야지요 왕의 신하는 내 아들의 육신이 죽기 전에 고침 받으려고 예수님 보고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하고 있지만은 예수님은 그들의 영이 병든 것을 보실 때에 얼마나 더 바쁘겠느냐 말입니다.
(마8:8)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못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