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네 길 예비하시리!
박창웅 열방 총무선교사.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는 중국 땅 J N 에서 국제 미아가 될 뻔한 이야기!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6월 26일 박목사는 C D 에서 출발하여 열방 신학교가 있는 T S이란 곳으로 이동하였다. C D 에 있는 하문학 목사의 마중을 받으면서 아침 일찍 택시로 기차역인 S B 역으로 갔다.
T S 까지 갈 때는 그런대로 풀리는 것 같았다. 캐빈(아래 위 침대가 마주보고 있는 칸으로 4명이 들어간다)에 자리를 잡고 여유 잡으면서 TS으로 향했다. 열차는 1시간가량 지연하여 5시간 조금 더 걸려 오후 2시 경 T S에 도착했다.
거기서 누가 나와서 나를 픽업하기로 되어 있다. 한 사람이 뭘 들고 있는데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가 버린건가? 아무래도 아까 그 사람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다가가 먼저 말을 걸어 보았다. 자기가 들고 나온 피켓을 보여준다. 바로 거기 한글로 써있는 이름의 나라고 손짓하자 반갑게 맞는다. Y 형제다. 한 시간 가량 기다렸다고 하는 것 같다.
점심 먹고 가자했더니 좀 후진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만두를 시켜 준다. 먹는 눈치가 별로라 물어보니 자기는 점심을 먹었다고 하는 말 같다. 자기 하고 만나서 맛있는 점심먹으려고 기차에서 앞 사람이 먹는 괜찮아 보이는 도시락도 안 사먹고 왔는데... 자기는 먹어 버리고...만두라 하는데 맛도 별로다. 남겼다. 그래서 자기가 봉지에 남은 것 싸서 식당을 나왔다.
S T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T S에서 S T까지는 또 다시 2시간 거리. 완전 시골 구닥다리 버스다. 오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다 왔나 짐작이 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뭐라고 시끄럽게 떠든다. 아마 자기가 내리는 정류장을 잘 모르나보다 짐작했다.
조금 있다보니 이제는 Y 형제가 엄청나게 떠드는 것이 아닌가? 이거 뭐가 좀 잘못된 거 아닌가란 찜찜한 예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엽 형제가 급히 버스를 내린다. 같이 내리자는 말도 없이 자기만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좀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내리니 비가 제법 오고 있다.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를 타고 다시 간다. 버스 정류장에 왔다. 택시가 지나가도 안타고 버스가 와도 안탄다. 한참 있으니 승용차 한대가 우리를 향해 오는 것 같았다. 과연 누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얼마 가서 비포장 골목길로 접어든다. 비가 와서 엉망인 골목길 끝까지 간다. 바로 T S 신학교다.
거기에는 이미 하루 전 김 J R 목사님이 와서 강의하고 있고 방재호 선교사가 통역하고 있다. 방재호 선교사를 만나니 말이 많이 통한다. 신학교를 둘러보긴 해도 앉아서 차 한 잔 할 겨를도 없다. 4시가 훌쩍 지났다. 다시 떠나야 한다. 뒤에 일정이 계속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C D로 돌아와야 그 다음날 아침 S Y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지 않게 되고 그래야 S Y 가서 이정삼 선교사 만날 수 있고 그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일정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바꾸기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게 오늘 J N에서 C D가는 기차를 안 놓치는 것이다.
방재호 선교사는 연신 걱정이다. 올 때 버스를 잘 못 탄 것부터 자기에겐 안심이 안 되는 대목이다. J N 까지 가서 저녁 기차 8시 30분 기차를 타기에 시간이 빡빡하단다. 방 선교사는 J N 까지 택시로 가야할 시간이라고 말했지만 Y 형제는 아는 택시 회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J N 까지 버스로 가는 수밖에 없다. 방선교사는 약간 걱정되지만 나는 해 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든단다. 뭘 보고 믿는다는 건지...다른 한국 목사님들은 절대로 혼자 보내기에는 안심이 안 된다고 말하면서...
버스표를 끊고 Y 형제와 작별하고 버스에 올랐다. 10-15 분 간격으로 떠난다고 하는 버스가 어찌된 판인지 25분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다. 조금 걱정이 된다. 일이 꼬이는 것이 아닌가? 늦게 출발하면서도 버스 운전사가 하여간 이래저래 꾸물거린다. 고속도로 들어가기 전에 몇 군데를 이미 들렀다. 다른 버스 비디오까지 손봐주면서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 급기야 참을성 많다는 중국 사람도 한마디 한다. 잘은 몰라도 왜 빨리 안가냐고 하는 것 같다. 운전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대꾸만 잘 한다. 나는 속이 타고 있다.
S T에서 J N까지 2시간 20분 거리라고 하는데 아무리 계산해도 기차가 연착하지 않으면 기차를 놓칠 것 같다. 운전사를 째려보면서 얼굴을 한대 갈기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가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운전사 미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마음먹고 기다리라는...
J N이 몇 킬로 남았는지 알아보려고 눈이 빠져라 이정표만 지켜본다. 달리는 속도로 가면 잘 하면 8시 20분 정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을까란 기대를 몇 번도 가져 보았다. 하지만 막판에 일이 틀어지고 있다. J N 시내에 들어가서 그렇게 많이 갈 줄은....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28분이다. “이거 좀 심상찮은데...”
부랴부랴 택시로 기차역까지 간다. 남은 급해 죽겠는데 나만 태우고 그냥 갈수 없단 양으로 다른 손님 한 명 더 태운다고 열 올리는 택시 운전사! 또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회개하곤 한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8시 37분. 달려 들어가니 기차역 입구에 서있는 검표원이 안 됐다는 표정 지으면서 뭐라고 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기차는 벌써 떠났으니 뭘 적어서 환불 받으란 소린 것 같다.
아이쿠! 드디어 올게 왔구나! 환불이 문제가 아니라 난 오늘 꼭 C D로 가야 하는데... 옆 건물을 보니 기차표 파는 건물이다. 일단 거기로 정신없이 들어간 박 목사. 중국어 한마디도 모르고 늘어선 줄 뒤에 무작정 기다리려고 하니 아찔하다. 내 차례가 돌아와도 할 말을 못한다. 보아하니 매표원들도 영어를 할 것 같지 않다.
어떡할 것인가? 방 선교사에게 전화해도 이미 수업이 시작되어서 전화를 받을 것 같지 않고 더군다나 전화 거는 방법도 모르겠고...전화가 된다 해도 방선교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별반 없을 거란 생각이다. 괜히 사람들 걱정이나 끼치면 뭐하겠냐..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이미 S T에서 J N으로 오는 버스는 끊어져서 자기가 여기로 와서 도와줄 수도 없고...
어쨌든 오늘 내로 C D로 가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없고 아무리 봐도 서울에서 부산가는 거리는 되는데 택시로 간다는 것도 그렇고... 흥정을 해볼 택시고 없고... 말이 돼야 흥정이나 해 보고 그다음에 안 되겠다고 말하기나 하지..
자 난리다. 어떡할 것인가?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평안한 마음을 주셨다. 아까 그 운전사 한 대 펀치 먹여주는 상상하지 말고 기다리라 하셨듯이... 이제까지 나와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서 분명 이 번 일도 해결해 주실 것이다.
얼떨결에 중국은 관시의 사회란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 직접 기차역 매표소로 가지 말고 누군가를 통해서 해결하란 지혜가 떠올랐다. 자 그럼 누구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 것인가?
가만 생각해 보니 C D에 묵었던 호텔에 트레벌 카운터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올커니! 트레벌 카운터가 있는 호텔을 가야겠구나. 그런데 이미 시계는 밤 9시를 지났다. 그 시간에 무슨 카운터가 열려있겠는가? 하여간 어디든 가보자. 부딪쳐보자.
제법 괜찮아 보이는 호텔이 바로 역 옆에 있다. 들어가서 눈치를 좀 살피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한 무더기가 들어온다. 가격도 만만찮아 보이는 호텔인데 웬 사람들이 겁도 없이 모여 들어와서는...아무래도 그 호텔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옆에 호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보니 따로 트래벌 카운터가 없다. 그래도 거기로 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들어가서 프론트에 있는 아가씨에게 무조건 말을 걸었다. 어쨌든 이 아가씨를 붙들어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아가씨 내 말도 잘 못 알아 들으면서도 어떻게 된 건지 끝까지 참으면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할렐루야!
드디어 한 친구가 온다. 20대 후반 괜찮아 보이는 메니저 급 청년이다. 영어는 겨우 더듬더듬 한마디씩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야 너 영어 장말 잘한다.” 띄워주면서 살살 꼬셨다. 이 친구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가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막 들기도 해서...
드디어 그 친구 자리에서 일어나서 함께 매표창구로 가잔다. 어이고 그게 어딘가. 관시 혜택을 한번 볼 수 있을까는 기대를 하면서...
입구에 다른 복무원들이 좀 있길래 그들에게 이 친구 말을 건다. 하지만 반응은 가서 줄서서 사라고 하는 거다. 하는 수 없다. 줄서서 기다린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과연 이 친구가 줄을 서서 기다려 줄 것인가?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배짱이 더 두둑해진다. “넌 골치 아픈 것 피해서 가고 싶겠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놔주지 않을 거야.”
얼마 후 우리 차례가 왔다. 뭐라고 뭐라고 한다. 시간은 다음날 오전 3시 05분에 C D가는 기차가 있다. 단 자리는 없는 기차다. 그래도 갈 거냐 대충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자리가 있든 없든 기차가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감사했다. 가야지 당연히 가야지. 박 목사 찬밥 더운 밥 가릴 형편이 아닌 줄 잘 아는데 뭘 못하랴?
또 다른 카운터로 옮겨간다. 드디어 145원 주고 끊은 급행 표를 물리고 좌석 없이 가는 표를 55원에 받았다. 그리고 돈을 좀 내어준다. 수수료를 제하고...돈을 얼마를 내주든 할배요지..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느긋하게 방하나 있냐고 물어봤다. 이제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쉬면된다. 방을 잡았다. 스위트룸이라고 말하지만 바퀴벌레 나올 것 같이 더러운 방이었지다. 몇 시간만 견디잔 생각에 방은 OK라고 했다.
우선 급한 대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으로 저녁을 때워야 한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저질 식용유로 튀긴 감자 칩과 치킨 한 조각의 맛은 별로다. 그렇지만 아까에 비해 마음이 얼마나 느긋한가? 무엇이든 먹고 쉬면 되지 않는가!
말은 몰라도 눈치로 새벽 3시 05분 기차 안에 까지 들어왔다. 과연 말로만 듣던 중국의 입석 기차다. 어쨌든 아침 6시 45분 까지만 버티자....한 시간이 흘러 이제 새벽 4시다. 근데 눈치를 보니 내 앞 쪽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선반에서 물건을 주섬주섬 내리고 있다. 이거 좋은 사인이 아닌가?
감사하게도 다음 역에 그 사람이 내린다. 나도 의자 하나를 차지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자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얼마나 감사한지...중국 서민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형편이 나은가? 그 기차가 베이징에서 오는 기차인데 밤새 이 의자에 겨우 붙어서 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거기 비하면 나는 11시부터 새벽 2시 20분까지는 호텔에서 쉬었다.
꾸벅꾸벅 앉아서 졸기도 하고 다리를 꼬았다 뻗었다 하면서 6시 20분 가까이 되었다. 사람들이 물건을 챙기고 부지런해진다. 종착역이 다 되어 가나보다 짐작은 하는데 6시 45분 도착이란 말이 생각이 나서 사람들이 다 일어날 때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는 가진 표 보여주면서 여기 S B 역 맞냐고 다시 확인을 한다. 그렇게 하여 C D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국제 미아 되지 않고 C D 온 것이 기적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할렐루야
“주께서 네 길 예비하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