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8월 7일부터 19일까지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가 2002년 6월 인도를 떠난 이후 만 5년 만에 이루어진 방문입니다. 저의 기대와 바램은 하나님께서 선교사가 없는 상태에서 인도에 심어 놓은 제자들이 어떻게 자라도록 해 주셨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면서 3일간 열방 선교회 선교관이 있는 말레이시아 페낭에 들러 이경근 선교사님을 만나고 선교관에 관한 제반 사항을 협의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닫혀 진 마음의 문들을 열어 가시는 것이 너무 보여서 감사드렸습니다.

이제 드디어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도착했습니다. 방콕에서 바로 하이데라바드로 들어가는 타이 항공이 생겨서 아주 편리했습니다. 공항에는 쿠마이 선교사님이 마중 나왔습니다. 쿠마이 선교사님 댁에서 하루를 자고 이튿날 숙소인 지바조티 리트릿 센터로 옮겼습니다. 호텔로 가면 쓸데없이 비싸고 아무래도 기도하고 찬양하는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 이곳을 택했습니다.

주일날 사카람 목사가 시무하는 온티마무리를 먼저 방문하여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온티마무리 교회에서 예배 중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만 5 년 만에 인도를 재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또 교회가 아름답게 자라서 귀한 복음의 열매가 맺히며 하나님의 도움심으로 교회당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데 대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왔던 겁니다.

온티마무리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고투르 교회로 갔습니다. 고투르 교회에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함께 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고투르 교회는 특히 수영중앙 교회가 땅을 사고 건축한 교회라 더욱 애착이 가는 교회입니다. 땅이 360 평가량 되고 그 위에 교회당과 사택이 지어져 있고 나머지는 땅에는 티크 나무, 맹고 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는 겨우 묘목에 불과했는데 이제 큰 나무들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70명 정도가 모이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거의 청년들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어려 보였는데 그들이 잘 성장하여 결혼도 하고 든든하게 교회의 기둥으로 자란 것을 보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라메쉬는 장가를 가서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아서 데려왔고 귀여운 아루나는 의젓한 아가씨로 자랐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사진을 찍고 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지역은 공장들이 속속 들어와서 땅값이 너무 올라버렸습니다. 지금은 그만한 땅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올라버렸습니다. 수영중앙 교회에서 땅을 사고 교회와 사택을 지었랬는데 그 교회가 이렇게 귀한 교회로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또 청년들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앞으로 인도 교회의 미래가 환하게 밝아 보였습니다.

고투르 교회의 자야라지 목사와 그 동생인 온티마무리 교회의 사카람 목사가 그 지역에서 10년을 떠나지 않고 사역한 결과로 두 교회들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격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월요일 다시 온티마무리 교회로 가서 미리 보아둔 땅 110 평을 계약하고 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사카람 목사는 그 지역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져서 그들이 이 일에 다 협조하고 축복해 주는 것을 보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잔금이 치러지고 등기가 이전되면 조속한 시일 내로 교회당이 건축될 것입니다.

이제 다음날부터는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을 하이데라바드로 불러 모았습니다. 마칠리파트남에서 사역하는 수짓, 엘루루에서 사역하는 라주가 왔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순간 또 다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수짓은 이미 마칠리파트남 지역에서는 어린이 전도와 교사 훈련 시골 지역 사역에 교단의 인정을 받아 감독이 파송한 상태입니다. 그 아내도 4 년제 신학대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고 수짓은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2 년제 신학 과정을 공부한 상태이고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수짓을 지도하고 가르치면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얼마나 동작이 느리고 답답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교사지도자 과정을 담당하는 사역자가 고등학교는 마쳤는데 졸업장이 없는 겁니다. 수학 한 과목을 통과하지 못해서 졸업장을 받지 못한 겁니다. 저는 6개월을 주었습니다. 고향에 가서 수학을 공부하고 졸업 시험을 패스하고 다시 사역자로 조인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6개월 간 사역비를 다 주면서요. 수짓은 결국 해냈습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수짓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생전 처음 아들을 인정하게 되었고 차츰 아들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라주는 외톨이 같기도 하고 겁이 많은 것 같이 보여서 안심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대견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라주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샌들을 신고 온 라주에게 제일 좋은 구두 한 켤레를 사준다고 시내를 다 돌아 다녔습니다. 정말 좋은 구두를 샀습니다. 우리나라 돈 5만 원정도 하는데 라주가 얼마나 좋아 하는지요. 그리고 내가 샀는데 한번 입고는 안 입는 셔츠들을 모아서 라주에게 주고 바지도 주고 수짓에게는 양복 입던 것을 주었습니다. 라주의 사이즈가 내 사이즈와 너무 맞았습니다.

이제 이녹을 만나러 3 명이 함께 이녹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녹은 너무 여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녹은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가장 유명한 신학교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 신학교를 나온 수재이지만 건강 때문에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주일학교 부장을 맡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이녹 집에서 저녁을 대접받고 이녹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고 떠나 왔습니다.

저는 이제 사역자들과 하이데라바드를 두고 다시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가 다시 이곳에 와서 인도 사람들과 같이 되어서 인도에 몸을 묻을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저가 가야할 길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 사람들에 의해 인도가 복음화되는 그 날을 바라봅니다. 그 때에 저의 바램은 그들에게 한 친구가 있었다는 말을 듣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인도의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해와 교통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거리에서 길을 건너는 것도 너무 어렵게 되고 공기는 숨을 쉴 수 정도가 되었습니다. 인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귀한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라는 희망과 영적 열매를 보면서 너무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