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인간, 그래서 더 빛나는...

<책소개>

Martin Luther King, Jr

제시 잭슨, 빌리 그레이엄 등의 평전을 쓴 정치인 전기 작가인 마셜 프래디에 의해 완성된 마틴 루터 킹 최고의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수줍고 내성적이던 어린 시절부터 1955~1956년 앨리배마 주 몽고메리 시의 버스 승차거부 투쟁을 통해 미국 전역의 이목을 끌고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떠오르는 시기, 그리고 1968년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모텔 발코니에서 흉탄에 맞아 절명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가 사뭇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인종차별 투쟁에 있어서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주장함으로써 말콤 엑스 같은 흑인 진보주의자들에게 비난받고, 백인 주류 세력에게도 소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암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일련의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26살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35살에 그는 흑인 최초로, 그리고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39살에 그는 도시 한복판에서 밀림 속 유격대원처럼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나이였지만, 노선지자 같은 그의 풍모에 비추어보면 이를 것도 없는 나이였다. 죽어서 그는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게다가 그는 평생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허약한’ 전술로 인종차별주의라는 거대한 악을 제압한 승리자였다. 그의 무기는 오직 말과 글이었다. 1963년 25만명이 운집한 워싱턴 광장 집회에서 참가자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본 온 미국인의 뇌수를 뒤흔들었던 장대한 웅변은 그의 말이 지닌 힘을 보여주었던 수많은 사례의 한 선명한 정점이었다. 이력으로 보건대 그는 위인 가운데서도 영광과 위엄의 후광을 쓴 특별한 위인으로 추앙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인물, 예외적이고 초인적인 인물이라면 위인전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마셜 프래디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그는 한 인물의 생생한 삶에서 위대한 것만을 뽑아내 경배의 초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위험하고도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 담긴 진실을 훼손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가 품었던 이상까지 박제로 만드는 일이다. “한 인물을 신성하게 만들어 숭배하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그 인물을 알맹이를 도려내 텅 빈 껍데기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기에서 ‘성인’ 마틴 루터 킹은 ‘신성모독’의 기미마저 엿보일 정도로 가차없이 해부당하고 추궁받는다. 그가 흑인 민권운동 폭발의 도화선이 됐던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버스승차 집단 거부 운동에 뛰어든 것부터가 ‘영웅적 결단’ 같은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 그곳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에게 주변의 사람들이 동참을 요청했을 때 그는 마지 못해 겨우 승낙했을 뿐이다. 다만, 일단 연단에 올라서자 청중의 혼을 빼놓는 천부의 웅변가 자질, 학창시절 쉼없이 쌓아올린 해박한 지식이 제어할 겨를 없이 풀려 나와 한에 맺힌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그 결과로 군중집회가 탄생했으며, 마침내는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는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연극 무대로 끌려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막중한 배역을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공포와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모양 좋게 그 배역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전기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예리하게 절개해 보이는 것은 이 인자하고 근엄한 목자의 뒷모습, 그의 사생활이다. 살아 활동하던 시절부터 연방수사국(FBI) 기밀서류를 빠져나와 풍문으로 번지던 그의 방종과 일탈의 실상을 지은이는 킹의 내적 갈등과 투쟁의 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낮의 ‘지킬 박사’가 밤의 ‘하이드씨’였다는 사실이다. 공적인 배역이 가하는 중압감에 짓눌릴 때마다 그는 리비도가 분출하는 야성의 디오니소스 제전에 몸을 맡겼다. 그런 이중성이 그를 더욱 ‘죄의식’으로 몰아갔다. 그는 때때로 자신의 설교에서 은연중에 이 내적 갈등과의 투쟁을 드러냈다. “우리 각자에게는 두 자아가 있습니다. 자나깨나 고귀한 자아가 패권을 쥐고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짊어지고 가야 할 벅찬 책무입니다. 부디 비천한 자아가 득세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 어쩌지 못하는 두 자아의 싸움을 외부로 투사한 것이 이를테면, 인종차별 철폐 투쟁이었다고 이 책은 암시한다. 그가 비폭력을 투쟁의 원칙으로 삼고 흑백의 화해를 목표로 삼았던 것도 자아의 한쪽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할 바에야 그 두 자아로 뒤엉킨 자기 자신을 통째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킹은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감당치 못하는 데 대한 죄의식, 그리고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매번 관능의 유혹에 굴복하는 데 대한 죄의식을 씻을 유일한 방도로 죽음을 생각했다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1968년 멤피스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난데없는 흉탄에 쓰러졌을 때 아무런 회한도 미련도 없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던 것에서 죽음에 대한 그의 갈망의 정도를 읽을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은 수많은 인간적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오히려 더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이 전기의 최종적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쓰시는 방법이다. 인간이 지닌 모든 약점, 죄악, 교만까지도 하나님은 당신의 궁극적이고 온전한 선을 위해 사용하신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는 자와 버림받는 자의 차이는 크지 않다. 양자 모두 죄 많고 연약한 운명이지만 선택받는 자는 자신의 죄악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반면, 버림받는 자는 수치와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을 외면해버린다. 차이는 그것 뿐이다.

이준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