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미국의 주도로 일어난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글입니다. 새로운 대통령으ㅟ 당선과 함께 미국을 위해 기도하는 기간을 맞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이 나라가 어떤 신앙과 정책을 추구하며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의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미국의 정의와 신앙 회복을 위해...
매일 아침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주요 연설 때마다 이를 즐겨 인용해 ‘목사 부시’라는 별칭까지 가질 정도로 신앙심이 깊다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 공격은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요 그분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행동일까.
부시 대통령은 과거 술과 담배를 즐겼지만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듣고 완전히 변화된 복음주의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그가 보여준 언행들과 특히 이번 이라크 공격에서 나타난 그의 전쟁관은 부시 대통령이 그리 균형적이지 못 한, 한 쪽으로 치우친 기독교 신앙관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복음주의적 신앙은 신앙의 내면적 측면, 즉 개인적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함께 전체 인류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구원에까지 모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의 사회적 구원은 어떤 명분에서든 결코 전쟁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편향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세속화를 보편화시킬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한 죄악들을 범람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다운 복음주의적 신앙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미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거의 다 결정해 놓고 하나님의 뜻을 형식적으로 구하는 절차를 따르기 때문에 이 같은 우를 범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개혁가 존 캘빈은 엄격한 자기 부인을 신앙의 완성을 위한 성화의 기본적 원리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의지와 목적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할 수 없다. 캘빈주의나 영국의 청교도 사상에 의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인간이 하나님의 인도를 발견할 수 있는 세 가지 빛이 있다고 한다. 주변 상황, 성령의 감동 및 성경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상당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진정한 섭리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생각과 반응들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은 우리의 결정에 중요한 고려 대상이지만 지나치게 상황에 의존한다면 우리의 인격과 주체성을 부정하기 쉽게 된다.
이번 전쟁을 불러온 모든 정치적 경제적 원인들에 앞서, 부시 대통령의 기독교 신앙이 문제되고 있는 이유는 그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신앙 본류가 단순히 이슬람을 타도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슬람교는 꾸준히 극복하고 설득해나가야 할 상반된 위치에 놓여있지만 이슬람교도 하나하나는 잃어버린 양으로서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고 가슴 아파하는 구원의 대상이다. 이 잃어버린 양들을 이번 전쟁으로 더욱 갈갈이 찢어 놓았으니 앞으로 아랍권 선교에 대한 미국과 유럽 교회들의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 자리를 아시아 교회 특히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메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수 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신앙의 전파는 결코 무력이나 강권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흔이 오래도록 선교의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은 일방적인 미국 승리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수많은 인명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1991년 걸프전 당시 15 만 명의 사상자 중 12 만 명이 민간인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아랍인 5인 가족 기준으로 보면 60 여 만 명의 선교 대상자를 잃어버렸다. 전쟁으로 가족과 모든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전파한다는 서방의 종교인 기독교가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게리 프리슨은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이란 책에서, 환경이 열악한 소자나 달란트가 적은 자에게 무관심하다면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당신의 영광을 위해 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위배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오직 힘으로써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는 ‘오만한 제국’의 등장을 막기 위해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다운 복음주의자들의 ‘건전하고 의식적인’ 분발이 시급한 때인 것 같다. 9.11 테러라는 ‘惡(악)’을 전쟁이란 또 다른 악으로 갚지 말고 화해와 용서와 평화의 ‘善(선)’으로서 모든 악을 극복하는 정의로운 미국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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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미국이 어떠한 나라입니까? 17세기 “하나님 제일의 신앙”을 추구하던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이 신앙을 기초로 모든 사람이 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함께 자유와 평등, 평화, 기쁨을 누리는 나라가 되게 한다는 일념으로 이 나라를 세웠습니다.
정말 그러한 나라가 되려면 군사력 이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막대한 부와 과학문명을 자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뜻을 내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점점 하나님의 뜻 보다 인간의 욕심을 쫓고, 하나님을 자랑하기보다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군사력에 의존하여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 나라입니까?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입니까? 아니지요. 우리가 발을 붙이고 우리의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있으며, 또 우리의 자녀들이 꿈을 이루고 뜻을 펼칠 터전이 되는 나라 아닙니까? 만약 이 나라가 교만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그 때 우리는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옛날의 군사문화는 일찌감치 쇠퇴하였습니다. 그 찬란했던 헬레니즘이나 로마 문명도 이젠 옛날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며 그 신앙으로 살고자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헤브라이즘은 비록 그 당시엔 그리스-로마제국의 핍박으로 잠시 가려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20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것은 바로 미국의 건국이념이 되는 청교도 정신을 회복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흐트러진 도덕과 윤리의식을 바로 세우며, 과학문명보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인간의 뜻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나라로 되돌아가도록 기도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을 위해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봅시다. 이 나라가 옛날 강대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정말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국민의 복리증진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세계평화를 위해, 세상 모든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해 진정으로 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008. 11.
이준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