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다시 보기
1984년에 개봉된 영화 “아마데우스”는 아카데미상 8개 부문과 골든글러브 작품상을 휩쓸 정도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한가지 잘못된 인식을 조장하였다고 한다. 바로 살리에리 증후군이다.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당시 모차르트의 경쟁 상대였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향해 가지고 있었던 열등감을 가리킨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뛰어난 작품을 쓰는 모차르트에 비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없는 살리에리의 좌잘감에서 생겨난 말로 흔히 1인자에 대한 2인자의 열패감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4살때 협주곡, 7살때 교향곡, 그리고 12살때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를 가까이에서 보아왔던 살리에리는 이렇게 절규한다. “신이여! 당신은 오만하고 방자한 그를 도구로 삼으시려고, 천재적 재능을 주시고, 저에게는 단지 천재를 알아 볼 수 있는 능력만 주셨습니까?”
모차르트를 보며 겪어야했던 잇다른 실망감과 좌절감에 살리에리는 그렇게 우러르던 신을 증오하기에 이른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전적으로 의지했던 신을 부정하는 것은 모차르트 때문이고 영화는 초반부터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살리에리의 모습을 그리다가 죄책감에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 독살설이라는 하나의 가설에 따라 만들어진 작품일 뿐.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와는 상관없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더구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 비해 음악적 재능이 뒤떨어졌다고 볼 수도 없다. 살리에리는 오스트리아 궁정 소속 작곡가로 1788년 궁정악장이 될만큼 음악적 역량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이든의 중요한 2개의 오라토리오를 지휘해 주었다는 말도 있다. 또한 열등감에 휩싸인 못난 사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더 나은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가난한 작곡가들을 도와주었으며, 특히 베토벤이 성악 지도를 해줄 사람을 찾을 때 살리에리가 적극 나서 무료로 그의 스승이 되주었다는 말도 있다. 이렇게 인격적으로 훌륭했던 살리에리가 영화에서처럼 모차르트를 증오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차르트는 방탕하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명성을 누린 인물로 전제된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약혼녀를 가로채고, 오만 방탕한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명성을 얻는 것을 보며 과연 납득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때문에 살리에리는 천재적 재능을 모차르트에게 부여한 신을 원망하고 그를 증오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을 전적으로 숭앙했던 살리에리가 신을 증오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불합리함과 불공정성이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모차르트는 신이 부여한 재능으로 좋은 작품을 쓰지만, 신의 말씀을 잘 따른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넘지 못한다. 온갖 말썽을 다 부리는 아이가 일등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사는 아이가 그에 뒤질 때 드는 느낌도 이와 같을 것이다.
정말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와 같이 모차르트가 개인적인 인성 면에서 문제가 많아서였는지 몰라도, 그의 말년은 매우 비참했다. 장례식은 초라했고,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현재 그의 유골은 찾을 수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신의 뜻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살리에리에게 반드시 불공평한 일만은 아니다. 여기에서 살리에리가 주는 현대적 함의를 좀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방대한 역사 소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강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은 한 뛰어난 개인들의 능력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시스템이라고 했다. 로마에는 한니발과 같은 뛰어난 장수는 없었지만, 결국 한니발을 이긴 것은 2인자 장수들의 협력과 조화를 가능하게 만든 조직적인 시스템이었다. 모차르트와 같이 뛰어난 1인의 천재적 역량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특히 예술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들이 많아도 그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천재적 역량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유기적인 조화와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야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보다 더 효과적이다. 그는 홀로 독선적으로 활동한 모차르트와는 달리 궁중악장으로 유기적인 조직화를 이루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살리에르 같이 개인적 역량은 좀 떨어져도 조직을 화합시킬수 있는 한 인물이 여러 똑똑한 모차르트들을 네트워크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MIT 경영대학원 슈말렌지 교슈는 그의 저서 ´카탈리스트 코드 (Catalyst Code)´에서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가운데 부가가치 생산모델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뛰어난 인재와 기술력을 가진 기업과 조직을 연결해주는 촉매(catalyst)가 중요해진 것이다.
촉매기업이나 촉매인이 플랫폼 문화와 같은 맥락 안에 있게 된다. 물론 촉매자는 공정하고 도덕적이며 성실해야 한다. 모짜르트가 혼자 독불장군으로 있지 않고, 촉매자의 수혜를 받았다면 말년이 비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영화에서처럼 살리에리를 열패감을 지닌 인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살리에리에게 ‘신’은 비록 공정하지 않았지만 시상식의 심사위원들은 그의 진가를 이해했던 것인지,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찬사를 받았던 것은 모차르트가 아니었다. 제4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85), 제10회 LA 비평가 협회상 (1984), 제5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5)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바로 살리에리역을 맡았던 F. 머레이 에이브라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