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목회 2003.8월호
(인터뷰-송천호 목사)/황강서 목사, 본지 편집국장

조기은퇴, 그 후 행복한 빚쟁이로

36년전 미국에 건너가 미국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을 하다가 25년간은 선교에 뜻을 품고 개척한 한인 페드럴웨이 선교교회(시애틀 소재)를 목회하다가 조기 은퇴한 송천호 목사를 용인 수지에 위치한 컨테이너로 만든 순회 선교단 숙소에서 만나 보았다.
수지 순회선교센터는 김용의 선교사의 신앙노선에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너무 인위적인 사역을 하지 말자’는 철학을 가지고 선교단체의 연합과 서로 돕고 섬기는 초대 교회의 삶을 추구하는 선교단체이다. 김용의 선교사가 한국 어린이전도협회 간사로 일할 때 송목사가 수련회 강사로 와서 만나 신앙적인 교제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선교단체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송목사가 불편을 감수하고 컨테이너 건물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김선교사로부터 은퇴하신 후 좀 불편하지만 이곳에 와서 함께 있어 달라는 초청을 받았고, 약한 교회를 돕기로 헌신을 했으므로 낮은 처지에서 생활함으로써 어려운 교회를 이해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반쪽 몸을 크게 수술한 후 걸음걸이가 불안하여 지팡이를 짚으라는 권유에 송목사는 아직은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며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 순회선교센터 사무실을 보여 주었다. 그의 꿋꿋한 의지와 열정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내일의 사역을 기대해 본다.

조기은퇴를 하게 된 이유는?
이민 목회 25년, 얼마나 어려웠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지만 송목사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역으로 참 행복했다고 회상하며 조기 은퇴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교회가 늙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한 사람이 20년 이상 목회를 하면 안일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선교교회가 지니고 있는 활력과 21세기를 향한 비전을 지속시켜 나가는 길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다.
송목사 부부는 교회 창립 20주년 행사 후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면서 조기은퇴를 결정했다. 1999년도 1월 첫 당회에서, 그리고 교인들에게 2000년이 되면 조기(62세)에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21세기엔 젊은 목회자를 세워서 우리 교회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교회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송목사 자신도 후임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주님은 목적한 대로 30대의 이중언어를 할 줄 알고 선교비전을 가진 젊은 목회자를 보내주셨고, 제2대 목회자가 부임한 후 약 4주간 인수인계를 마치고 이 취임식 예배를 드렸다. 1부에 송목사가 후임목사 취임식을 인도하고 이어서 2부에서 새로 취임한 목사가 송목사의 퇴임식을 인도하는 간단한 예배가 있었다.
송목사 부부는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선교 교회 출석을 하지 말자고 했으며, 원로목사보다 선교목사로 파송하여 주기를 부탁하여 교회와 노회의 허락을 받고 한국에 나왔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송목사는 8.15해방과 6.25동란으로 어머니와 형을 잃고 가족과 헤어져 홀로 이곳저곳에서 고생하다 결국은 부산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국 선교사를 만난 것이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선교사를 통해 미국인 월씨 내외를 소개받아 그들이 1953년부터 7년동안 장학금을 주어서 고등학교와 신학교를 마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받아 공부한 그는 빚을 갚는 심정으로 남에게 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6.25를 통해 본인이 너무 고생하여 1960년대부터 이촌동 한강다리와 구로동, 봉천동에서 성경구락부 봉사를 통해 한국의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을 했다. 그러면서 늘 미국을 동경했고 미국유학에 대한 꿈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어 주셨다.
송목사가 서울 YFC간사로 일하고 있던 해에 미국 방문의 길이 열렸다. 그는 미국인 청소년 사역을 견학하고 또한 기회가 주어지면 신학공부도 하고 싶었다.

미국 청소년 복음사역을 시작하고
미국에 도착한 그는 오랫동안 학비를 보내 주었던 그의 생애의 은인 월씨 부부를 만났다. 그는 그 가정이 매우 부잣집인 줄 알았는데 막상 그의 집을 방문해보니 남가주 빈민지역 낡은 집에서 20년째 사글세로 살고 있었다. 그런 어려운 살림에도 자신을 소개받은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위해서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주님 앞에서 평생을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살게 된다.
당시 미국은 히피 운동과 마약이 청소년들에게 학원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간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그가 겪은 동란과 그가 만난 주님을 소개하는 것이 미국교회와 선교사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 확신하고 기도했다. 주님이 그의 인도자가 되어 주셔서 미국 교회나 학교에서 집회의 문이 열렸다. 그는 초청이 오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미국에 가서도 청소년운동을 하는 그가 한국 청소년을 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 한국 청소년들을 위해 모금된 헌금을 가지고 팔당댐 조금 지나 국수리라는 한강변에 틴라이프 제자 훈련원 건물을 지었다. 틴에이저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해서도 사역을 시작하여 금년까지 근 30년간 3백24회에 걸쳐 4만 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다. 오세철 목사, 송신호 목사, 황장옥 목사 등이 주가 되어 훈려누언을 유지하고 운영하였다. 그런데 설립자 그가 나온다고 하니 다시 맡아 활성화를 시켜 보라고 한다.
매달 60~70명씩 훈련생을 배출하고 있는데,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하게 확립시키다. 또한 농어촌 교회 목회자 부부, 중소교회 목회자 부부를 살리는 목회자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목회자만 변해서는 교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데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목회자 부부 훈련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국내외 사역
그는 국내외적으로 활동무대가 넓은 선교목사이다.
ACTS에서는 교수로서 목회자와 선교사 양성을 하고 중소 교회를 살리는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수지 안디옥신학교에서는 비록 규모는 작으나 자신의 나라에서는 엘리트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영어로 신학을 가르쳐 복음의 일꾼으로 양육하고 있다. 그리고 순회선교센터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경우 1백 명 미만의 소규모 교회가 80%이상이라는 말을 듣고,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사역하는 교회 형편에 따라 1일 혹은 3일간 ‘행복 찾기’ 말씀집회를 전국의 교회를 대상으로 자원해서 인도하고 있다.
국제적인 사역으로는 지구촌 가난한 나라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아프리카 등)의 고아들과 모자들을 돕는 World Vision미국 대변인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위성방송으로 복음을 전하는 라디오 전파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바란다
그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목회자의 패러다임만 바뀌면 교회는 달라집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평신도들을 교회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 사역의 주체로 삼아 평신도들이 사역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존경받는 신앙인,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부모, 서로 존경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훈련받고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아 자신의 일터로 파송되어지는 주체자가 되는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둘째로 물량주의적인 성공주의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본질적인 성숙에 최선을 다하길 간절히 원합니다. 권위주의 입장이 아니라 섬김의 자세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내주는 그런 사역을 펼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조직체로 만들지 말고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로 만들었으면 좋겠고 교회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하는 목회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오랫동안 구태의연하게 고질화된 교회가 갱신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목회자가 변해야 하고, 목회가 젊어져야 교회가 젊어집니다. 목사가 어떻게 목회에 성공하느냐보다 어떻게 최선을 다해 죽느냐를 생각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초대 교회로의 복원운동으로 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www.cbensong.org(벤송 교수011-9263-4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