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이어의 기적
2001년 가을이었습니다.
봄에 입양한 8개월짜리 딸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눈을 맞추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가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눈이 없으면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교감을 하게 만드셨을까?’
호기심은 기대감으로, 기대감은 설레는 마음으로 바뀌어 시각장애아동을 입양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렵게 시각장애아동을 입양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욕 나오려고 하니까 그만 해.” 대화 자체를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남편의 반응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할 정도로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화내면 멈추고, 조용해지면 다시 말하고, 4년 동안 저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2005년, 남편은 아내의 시달림에 지쳐 조건부로 입양을 허락했습니다.
첫 번째, 건강유지를 위해 비만에서 벗어날 것, 목표는 1년에 운동으로 20킬로 감량.
두 번째, 아기를 양육하기 위해 사회활동 전면 중단.
세 번째, 책임이 가능한 지체장애나 지적장애일 것.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남편도 그건 절대 허락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 년 후, 하나님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이루게 하셨고, 2006년 12월, 입양기관의 강력한 요청으로 지적장애 3급과 애착장애가 있는 다섯 살짜리 둘째 딸을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7월, 교회수양회에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기도가 아닌 하소연 섞인 통곡을 했습니다. “ 주님, 제가 그동안 간절히 기도해서 얻은 아이가 이 아이였어야 했습니까?
이건 너무 합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한 아이의 등장으로 가족구성원 모두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의사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몸부림치며 울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저의 어깨를 잡아주었습니다.
“ 엄마,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해봐.” 귀에 속삭이는 믿기 어려운 큰아들의 한마디에 물끄러미 올려다봤습니다. “ 5남2녀잖아요.” 저는 많은 시간 오병이어를 묵상하게 되었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의 배를 불리기에도 부족했던 오병이어, 그 자체는 초라했지만 주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많은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으니까요.
그 후 일곱째이자 둘째딸인 내리는 의사선생님이 기적이라고 말씀하실 만큼 몰라보게 회복이 되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공부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2008년 말 즈음 어떤 입양아빠로부터 길고 우울한 상담전화를 여러 번 받게 되었습니다.
14살에 입양한 지체장애 아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보육원으로 가버렸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러 김천에 있는 보육원으로 갔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적대감에 가득 찬 눈빛, 공격적인 말투의 아이가 저와 3시간의 대화를 하고 났을 때 뜻밖에도 저를 따라 우리 집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다급하게 이루어진 일이라서 남편과 상의 한 마디 못하고 2009년 3월1일, 우리 가족이 된 성일이는 함께 생활하다보니 약시가 시각장애로 악화되었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서로 심한 오해로 관계가 깨졌던 안타까운 경우였습니다.
다섯째 아들이자 여덟 번째로 온 성일이는 분명 장애가 있지만 정직하고 성품이 아주 좋아서 적응하는데 어떠한 어려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성일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성일이는 제가 20킬로 감량에 성공해서 입양한 둘째 딸 내리가 오던 날, 제게 상담을 요청해 오셨던 입양가정에 입양되었던 것입니다.
성일이가 우리 가정에 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찬양을 좋아하는 성일이는 내년에 서울 맹학교에 입학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맹학교에 상담을 가보니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전맹의 학생에게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성일이는 준교사역할을 할 만큼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올해 1월 제주도에 세미나를 갔다가 우연히 서귀포에 있는 보육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 한 부모가 낳은 4형제가 모두 보육원에서 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죄하는 마음과 알 수 없는 분노와 깊은 슬픔으로 가슴이 뻐근했습니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보육원 원장님이 5월에 우리가정을 방문하셨는데 우리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런 가정에서 입양한다면 우리 보육원 아이들 다 입양 보낼 수 있는데 4형제도.”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가진 원장님과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입양 현장에서 아들은 기피대상자입니다.
더구나 아이들을 낳은 엄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정신질환 부녀자보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신질환이라는 유전질환도 입양 진행할 때 기피대상 1호입니다.
거기다가 4형제, 그것도 6학년,4학년,3학년, 일곱 살입니다.
원장님의 말씀을 함께 듣고 있던 고 3짜리 셋째 아들 영범이가 갑자기 이러한 제안을 했습니다. “ 엄마, 그 아이들 우리가 데려와요.”
저는 대답대신 철없는 아들 앞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짓으로 너무 심한 농담을 하는 것 아니냐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때 아들이 혼자 소설을 썼습니다.
흥분된 목소리로, “ 4명이 오면 8에다가 4를 더하니까 12명이잖아요. 우리 식구끼리 패를 나눠서 족구를 해도 되겠어요.”
하도 기 막힌 사연이어서 잠자리에 누워 남편에게 들려주며 맞장구쳐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낯선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남편은 천장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 아이들 한번 보러 가자.” 저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 아니 왜?”
“ 너무 불쌍하잖아.” 긍휼,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돌보아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남편에게 미쳤던 것입니다. 저는 차마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당연히 발끈했습니다.
“ 방이 있어. 돈이 있어?” 그 후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부담감으로 제주도에 가게 되었고 정신질환 부녀자 보호소에 있는 아이들 엄마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주님의 보좌를 움직였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가끔 남편은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서 중얼거렸습니다.
“ 이건 나답지 않아. 나는 입양할 때마다 반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잖아.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나봐. 차라리 아이들한테 거절당하고 싶어.”
“ 당신 제 정신 아닌 것은 맞아. 성령 충만한 상태가 제 정신이겠어?”
아이들의 적응을 위해 여름방학 때 아이들 네 명이 비행기를 타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그때 큰아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 엄마, 마침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어요. 12 광주리,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잖아요.”
보름가량 함께 지내고 난 이후, 아이들은 모두 합격판정을 내렸습니다.
우리 집에 입양되고 싶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아들의 예언이 성취되어 12명의 자녀가 생겼고, 많은 무리가 기쁨을 배불리 나누게 되었습니다.
만유의 주, 왕 중의 왕,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눈앞이 캄캄해서 주저앉아 울 때마다 주님은 조용히 다가와 저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 분은 제가 다시 일어나도록 기다려주셨습니다.
저 대신 살아주셔서 저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게도 하지 않으셨고 저의 부족함을 해결해주시는 해결사 역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부족한 저의 존재 그대로를 용납해주셨습니다.
주님과 같은 분은 온 우주에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요즈음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16~18)
“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전도서 3장 12~13)
우리 부부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마음이 평안합니다.
적당히 늙어서 잠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새벽이면 자동적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에 띄는 대로 기꺼이 집안일을 합니다.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현관 밖에서 빨래를 널며 감사기도를 합니다.
남편은 요리책을 펼쳐놓고 된장국도 끓이고 아이들 좋아하는 식단으로 아침을 차립니다.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소모적인 일이라서 마지못해 하던 이 모든 일이 경건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부부는 한 명 낳고, 한 명 입양한 후 자녀가 셋이 될까봐 두려워서 두 사람 모두 영구불임수술을 한 사람들입니다.
자녀수는 우리 부부의 계획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자녀는 꿈꿔 본 적 조차 없습니다.
아이들이 잉태되는 것도 몰랐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도 몰랐습니다.
주님이 손수 태중에서 만드셨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계산으로 답이 나오지 않아 두려움에 사로잡혀 머뭇거리는 우리 부부에게 주님은 대가도 없고 조건도 없이 자녀라는 선물로 안겨주셨습니다.
셋째 아들 영범이는 99년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살 어린 동생과 함께 우리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불안정하게 번뜩이던 눈동자를 본 사람들은 이 형제를 볼 때 몹시 심란하게 생각했습니다. 무기력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피아노를 시켰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비파라는 악기를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고액을 주고 악기를 사줬습니다.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취미를 갖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영범이는 기대이상으로 열심히 노력했고 국악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셨습니다. 아이들도 많은데 경제적으로 가능하겠냐고.
첫 번째 등록금고지서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165만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일 년 후, 영범이의 학교는 사립에서 국립으로 바뀌었고 2학년부터는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영범이는 예술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남들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부모님들이 온갖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우리는 입시용 악기 구입에 이미 지친상태라서 선물은커녕 학비걱정에 여념이 없습니다.
얼마 전, 서울예술대학에서 개최되는 종합예술제에 아들이 출전을 했는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범이가 국악부문에서 1등을 했습니다. 1등 부상은 1학기 등록금 전액면제입니다. 시상식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넷째 아들 영환이는 두뇌가 아주 명석하고 창의적인 아이입니다.
어떠한 틀이나 규칙 지키는 일을 특히 힘들어합니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응이 결코 쉽지 않아 오랫동안 우울증을 치료한 바 있습니다.
희망도 없고 의욕도 없던 영환이가 유일하게 즐기는 일은 그림그리기였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그림 그리기, 지금은 산업디자인으로 예술대학에 진학하고자 홍대앞까지 가서 밤늦도록 열심히 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생후 6개월 때 입양되어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꿔 논 하나님의 선물, 97년생 하선이는 운동신경이 발달하여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날마다 매진하고 있으며, 생후 6개월 때 입양한 2000년생 큰 딸 하나는 의사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얼마 전에는 자기가 운영할 100층짜리 병원설계도까지 그려놓아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둘째 아들 희곤이는 보육원에서 새벽이면 목탁을 두들기던 아이였습니다.
이름도 불교색채가 뚜렷한 석가모니 석자에 쇠금 금, 용용 자였습니다.
피부가 유난히 까맣고 가는 눈에 강한 인상을 주는 둘째 아들을 입양할 때 많은 분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범죄형이라는 겁니다.
남편은 잠시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입양한 아들이 구치소나 들락거리면 어떡하나.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버지로써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때 남편은 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영치금도 넣어주고 면회를 가야겠다.
그런다면 아들은 그 안에서라도 회심을 하게 되지 않겠냐는 확신을 얻게 되어 90년 4월, 일곱 살짜리 아들은 입양과 동시에 기쁠 희자에 땅 곤, 희곤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십 여 년 후,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걱정하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친구들과 나가더니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새벽 1시즈음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어떤 아이를 때려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아들은 경찰서에 있으니까 경찰서로 오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려하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경찰서에 가보니까 아들이 입은 티셔츠에 피가 묻어있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조사원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뒷좌석에 앉아 기도를 하는데 아주 낯선 감정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 저 아이를 입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보호자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불러올 부모가 없다면 저 아이는 곧바로 소년원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분명 범죄자로 가는 지름길이었겠죠.
그때 똑같이 고개 숙여 기도하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저는 내심 평소처럼 아들에게 화를 벌컥 내면서 후려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부드럽게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 희곤아, 걱정하지 마. 아빠가 다 책임질게.” 저는 많은 세월 남편과 함께 살아왔지만 그때만큼 멋진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합의금문제만 해결하면 되었는데 그 문제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상대방은 코뼈에 금이 간 상태로 응급실에 누워있었으니까요.
누군가가 조언을 해줬습니다. 우리아들도 다쳤을지 모르니까 사진을 찍어보라고..
그래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우리아들은 코뼈가 부러져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무사히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둘째 아들이 생활체육대에 입학한 후, 선배들이 먹인 술에 취해서 온 적이 있습니다.
취중에 아들은 제게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냐고 물어왔습니다.
“ 엄마, 그때 마랴. 아빠가 내 어깨를 잡고 아빠가 다 책임진다고 했을 때 정말 눈물 나더라.” 그러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쏟아 분 것도 많은데 그것보다 위기에 처해있을 때 감싸준 말 한 마디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 셈입니다. 지금은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부보다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운동에 관련이 있는 종목은 자격증을 다 땄습니다.
둘째 아들은 지금, 내년 일 년 동안 선교지에 가기 위해 어학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태권도가 인기 1위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