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주요 교리적 차이를 설명하고 양자의 조화를 추구하는 글입니다.]
장로교의 예정론과 감리교의 자유의지론의 조화에 대해...
예정론 (豫定論, Predestination) 이란 하나님이 전체 인류 중 일부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로 하신 영원한 목적을 일컫는 신학적 이론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세계 지배가 나오는데 이것이 신약성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관련해 이 교리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고대 기독교 사상가인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의지적인 선택에 의해 구원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가 정해진다는 예정설을 주장했는데 이후의 예정론의 경향은 '구원에의 예정'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16세기의 종교개혁자인 존 캘빈에 의해 '구원과 멸망에의 예정' 이라는 이중예정설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인간을 구원할 자와 멸망할 자로 예정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선택과 유기(遺棄, Damnation)라고 하는데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 행사에 대해 인간은 항의할 자격이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 9:16-25). 왜냐하면 선택의 이유와 근거는 인간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으며(롬 9:16), 반면에 유기된 자들의 영벌의 이유와 근거는 인간 자신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 3:18-19).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유기된 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본질상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여 영원한 멸망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 중에 몇을 선택하여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의 선택적 의지에 의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의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구원을 자신의 공로로 돌릴 수 없고 어떤 자랑도 할 수 없습니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행위와의 관계에 있어서 마틴 루터는 하나님이 만세 전에 인간의 행위를 예지하시고 선택하셨다는 조건적 예정설을, 캘빈은 인간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무조건적 예정설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예정론에 대해 운명론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예정론은 인격적 하나님의 선택을 전제하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자유의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데서 운명론과는 다릅니다.
캘빈의 예정론을 반대한 사람이 바로 알마니우스인데, 캘빈이 인간의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구속 (Limited atonement - 예수님이 모든 사람이 아닌 일부 선택된 사람만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다는 견해),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rverance of saints) 을 주장했다면, 알마니우스는 자유의지, 조건적 선택, 보편적 구원, 항력적 은혜, 은혜의 상실 (은혜로부터의 타락 가능성) 을 주장했습니다.
이 알마니안주의는 1618년에 열린 도르트 회의에서 캘빈파에 패배해 추방되었으나 18세기에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에 의해 채택되어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특히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회개할 수 있도록 선행은총 (Preventing grace)을 베푸시고 그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따라 의로움의 은총 (Justifying grace)과 성화의 은총 (sanctifying grace)까지도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에게 믿음을 주시고 의롭게 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그 은혜에 따라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에 달려있다는 것이 다른 종교개혁가들과 구분되는 웨슬리 신학의 특징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웨슬리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 없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Qui fecit nos sine nobis, non salvabit nos sine nobis).”
이처럼 개신교 정통 교파 내에서도 예정론을 받아들이는 교파와 그렇지 않은 교파가 있기 때문에 예정론을 기독교의 핵심교리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중도적 위치에서 양 이론의 장점을 취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캘빈주의로 치우치거나 극단적인 알마니안주의로 치우치는 것은 모두 신앙의 정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 밖에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유의지를 포함한 예정론,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 믿은 자의 결과론적 신앙고백과 믿을 자의 결단을 촉구하는 초대 등의 설명이 있으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확실한 이론적 정립이 되어 있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모순없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장로교의 예정론은 인간의 결단과 자유의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무조건적인 예정론이 아닙니다. 장로교의 예정론도 믿는 자의 결단과 의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정론에 대한 장로교의 교리는 감리교와 대립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받도록 예정된 자에게는 회개와 신앙생활의 변화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마태 7:16) 라고 하셨는데 구원으로의 예정을 받은 자에게는 신앙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신앙의 열매가 없는 사람이 예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태 3:10) 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 역시 신앙의 열매가 없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온전히 믿고 영접한 사람은 선택을 받은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의 확신에 대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고 성령에 충만하고 주님의 일에 헌신적인 사람은 선택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받은 사람에게는 신앙의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장로교가 말하는 예정론은 예정을 받은 자에게는 구원에 대한 확신과 신앙생활의 열매가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행도 중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장로교의 예정론과 감리교의 자유의지론은 상호 대립적인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저를 몸 불편한 장애인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지만 당신의 사업에 저를 사용하기로 태초부터 계획하신 것은 불변의 "예정론" 입니다. 그 계획에 따라 하나님은 저에게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시지만 저는 제 "자유의지"에 따라 그 기회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고 또 실수로 놓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제가 미련하고 어리석어 주신 기회를 거부하거나 놓치더라도 당신의 계획 실현을 위해 또 다른 기회들을 계속 허락해 주십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하나님이 주신 기회들을 거부하고 그분을 멀리 한다면 저는 심판을 받아 영원히 "유기"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어리석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그분의 손을 꼭 잡고 의지한다면 태초의 예정에 따라 하나님은 저에 대한 약속을 꼭 이루어주십니다.>
이준수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