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교리보다 말씀의 권위가 앞서야...

원래 교리란게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하여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건데, 주객이 전도되어 특정 교리를 말씀보다 우위에 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특정 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까지 죽여가며 피터지게 싸운 적도 많았구요.

캘빈의 예정론도 그 배경을 따져보면 중세 카톨릭 교회의 "선행에 의한 구원 (Salvation by good works)" 교리를 반박하기 위해 나온 이론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면죄부 판매"나 자선행위 같이 착한 행동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카톨릭 교회의 주장에 반대하여,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하나님이 태초부터 구원받을 자들을 따로 정해 놓으셨다는 예정론이 나오게된 것 입니다.

그러다가 17, 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견으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구원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만 이해하는데 한계를 느껴 인간의 반응이나 책임도 함께 역할을 한다고 보는 알미나안주의가 주창되게 된 것이구요.

그러므로 성경 말씀 이외에는 영원불멸하게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교리란게 없습니다. 정-반-합의 변증법적 원리에 따라 각각의 시대 상황에 맞게 바뀌고 재해석되기 마련이지요. 마치 애담 스미스의 "국부론"으로 대표되는 고전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이 제1차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거치면서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이론으로 대체되고 다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이론에 자리를 내준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종교적 교리나 정치, 경제상의 이념을 대하면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그 교리나 이념의 "도그마화 (Domgmatization)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할 교리나 이념이 스스로 절대화되어 어떤 도전도 받지않고 인간의 자유와 창의적인 사고를 짖누르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든, 주의, 주장이든 항상 절대적으로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그것이 과연 성경 말씀에 부합되며 우리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지를 꼼꼼이 따져봐야 합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이야말로 신학 뿐 아니라 모든 학문을 수행하는데 있어 필수 요소인 것입니다.


이준수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