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소망(벧전3:1-7) 2009.11.08.
지난 주간에 월간조선에 서울대 수석입학 졸업생들의 현재에 대해서
조사한 기사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1970년부터 1989년까지 20년 동안 서울대 수석입학생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조사한 기사인데,
수석 입학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직업이 무엇이겠습니까?
요즘은 수석입학을 하면 보통 의대나 법대를 간다고 할 텐데,
법조인은 7%, 의사는 6.8%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많은 직업은 교수로 53%였습니다.
그때는 수석 입학한 학생들이 지금과는 달리
물리학과도 많이 지원했다고 하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이 변한다는 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시대에 교회는 과연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작년에 한 신문에 1992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인이 사망원인을 조사한 기사가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암, 두 번째가 뇌혈관 질환, 세 번째가 심장 질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당뇨이고 다섯 번째가 자살입니다.
그런데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2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나 교통사고가 아닌 자살입니다.
20대의 사망 원인 가운데 30%가 자살입니다.
신문에 나온 기사에는 지난 92년에는 자살이 사망원인 10위였고,
98년에는 7위로, 그리고 2006년에는 5위로 올라왔음이 나와 있습니다.
곧 앞으로 계속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길이 구만리와 같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스스로 살아야 하는 소망을,
살아야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인생에서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니 스스로의 인생이 불행해 지는 것이고,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니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불행을 고치는 약은 이제 소망밖에 없다.” 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그만큼 소망이 중요하다 사실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다른 어떤 때보다 오늘날 세상에서 소망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소망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히 교회가 나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렇게 세상을 향해 소망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확실한 소망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망에 대한 이유
베드로전서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기본지침을 가르치는 성경으로서,
배움의 여정에 있어 기초를 놓아 주는 초등학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소망에 대한 고백이 최우선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강렬한 기대 속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들에게 전해 준 바에 따르면,
초대 교회의 예배는 하나의 부름 혹은 기도로 마쳤는데,
그것은 팔레스타인 교회에서 쓰던 표현이었습니다.
곧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고전16:22, 계22:20)라는 표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나사렛 예수님의 삶, 그의 고난과 죽음,
그의 부활과 승천을 기념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기념은 ‘오시는 분’에 대한 소망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명령에 따라 성찬을 거행할 때마다 이 소망은 다시금 되새겨졌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중은 이러합니다.
“주께서는 너희들, 곧 그의 교회 가운데 있다.
하지만 주를 소망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렇게 주께서는 너희 가운데 있는 것이다.
너희는 언제나 당당하게 삶을 헤쳐 나가도 된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산 소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바울이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로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우리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대답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이 산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의 권세에서 살려내신 하나님의 능력에 관계되며
그 소망은 우리의 생사를 하나님의 생명 의지에 붙들어 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의 타고난 천성이 아니므로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지’ 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 속에 있는 그 소망’은 우리 안에 잠복해 있어서 우리가 충분히
깊이 우리 내면을 들여다 볼 경우 찾아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 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니..,’
갑바도기아 라는 곳은 거대한 바위 굴로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은 박해를 받으면서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일설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을 태워서 네로황제의 정원을 밝힐 정도로 박해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런 박해를 피해서 살아가던 흩어진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진 것이 베드로전서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처럼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산소 망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한 단어는 산 소망이라는 단어입니다.
Living hope. 살아있는 희망이라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베드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흩어졌던
당시의 크리스천들에게 그들이 아직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숨기어져 있으나
믿는 이들에게, 그리고 소망과 사랑에 대하여 노출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때문에 골로새서에서는 “너희 안에 있는 예수 곧 거룩한 소망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1:27)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은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말씀으로, 그의 성찬으로,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집??. 이런 소망으로 말미암아 우
리의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내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고
세상을 위해 우리와 함께 행하시고자 하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적 기대들과 맞서 싸우는 소망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은 우리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사귐인 교회에로 인도하며,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다 줍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을 망각함과
그로 인한 소망 없음에서 생겨나는 우리의 타성에 맞서 싸우며,
우리의 천성적인 기대들과, 우리의 살려고 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남으려는 의지와, 우리의 완고한 고집과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게 되리라고
희망적으로 상상하는 미래에 대한 갈망과도 논쟁을 벌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평생 동안 배워야만 하는 것이며,
또한 그 배움은 극히 쓰라린 과정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고 기대하기 때문에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다고 약속하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희망이 지닌 저항과 싸워야 하고 이겨내야만 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한다면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위해 나의 희망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이런 소망을 우리 안에 두실 수 있고 우리 안에 ‘불러 일깨울’ 수 있는데,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안에 있는 소망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을 향해 열어 주시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만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소망함은 기도함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소망하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기도에서 표현되는데 탄원, 간구와 중보기도, 찬양과 감사가 그것이다.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뜻은 그분을 기도 가운데 부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자신을 알려주신 대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탄원에 못지 않게 절실한 간구에서,
기도자에게 이 소망이 꼭 의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망 없이는 누구도 진실 되게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도자가 고려할 수 있는 ‘자신의’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에서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는 듯이 보이고 우리에게 멀리 있는 듯이 보이는
바로 그곳에서 자신을 내보이시는 그 소망 안에서, 우
리에게 당신이 뜻하시는 바를 보이시고, 소망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뜻에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감사 기도는 성취된 소망에 대한 표현,
즉 하나님의 행하심에 화답할 수 있고
더 이상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기도하는 사람을 이미
사로잡고 있는 하나님의 행하심에서 드러나는데,
비록 그 사람이 이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해도 그러합니다.
소망은 여하간 그 가장 내적이고 영적인 핵심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인식과 경외가 여러 번 교차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하나님의 현존에 직면한 떨림으로부터,
그의 약속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실제로 교회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사귐,
즉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교회는 단지 이런 소망으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습니다.
하늘 에너지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듯 사람이 살아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늘로부터 그 에너지를 공급받아 살게 되어 있었는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그 에너지의 통로가 끊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타는 목마름으로 가뭄에 물을 찾아 헤매듯이
그렇게 끊겨버린 에너지를 찾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그 에너지가 있나 하여 타인을 못살게 굴기도 하고,
무슨 제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과학을 발달시켜 최첨단 물건들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각종 사상과 이데올로기, 다양한 종교를 만들어 보지만
그 끝엔 언제나 허무함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끊어진 하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가 생겼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하늘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최상급 표현으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부활 승천하신 후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표현으로
이 땅에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에 우리를 그 동안 지켜주시고 성장시켜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행복한 신앙인이 행복한 교회를 이룬다
주님께서 이 교회에 모퉁이 돌이 되었고 베드로께서 유대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었으며
사도바울이 이방인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천국의 시민이 된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요?
너희들을 통하여 나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를 원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가장 아름다운 교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소망으로 붙잡혀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힘든 연단의 시간이 될수도 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내실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붙잡히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소망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하여,
우리 영암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될 때 우리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성도가 영암교회를 통하여 행복을 나누어 가질 때에,
주님 전에 찾아 나올 때마다 행복을 사 가지고 돌아갈 때에,
여러분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살아갈 때에
이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부유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고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많이 모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지역에 상처 난 사람들, 문제 많은 사람들이 우리교회 찾아 나올 때마다
치유 받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적인 성장과 하늘의 상급,
그리고 희망과 미래, 성경적 섬김과 은혜의 회복이 있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동역자 된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것이 지도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 교우들과 영암교회를 위한 것이기에
주어진 책무를 다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교회를 맡겨 주신
거룩한 뜻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귀감이 되는 자랑스러운 과거와 희망찬 미래를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들과 가정과 삶의 터전 위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