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상실은 무엇이 소중한지 보여 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쳐 준다.
관계는 자신을 일깨워 주고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두려움, 분노, 죄책감조차도 훌륭한 교사이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삶은 그 특별한 매력을 나타내기 위해 굴곡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아름답고 많은 것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외모에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못 행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내적 경험입니다.

우리는 만족스럽고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경험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다만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종 종 자신의 좋은 점을 깎아내리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신적이고,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자선 단체 대표에서 성직자들까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수를 하면서 계속 발전해 가는
선한 사람은 행복할 수 있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결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대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훌륭함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훌륭함을 기억하고
우리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서로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삶은 각자에게 주어지는
시험과 도전으로 이루어진 학교입니다.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을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두 살 된 아이를 잃은 부모는 그 아이가
부모에게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여기에 왔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번 삶에서는 깨닫지 못하게 될 배움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배움입니다.
누군가를 보고 “너무 안됐어.
그 사람은 죽기 전에 용서의 배움을 얻지 못했어.”
하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에게 예정된 것을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배우지 않는 편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에게는 용서의 배움이 예정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를 지켜봄으로써 그대가 용서의 배움을
얻도록 계획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배워야 하지만,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풍우에 시달릴 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시험이 주어졌는지,
하나님은 왜 그렇게 무정한지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시련을 겪는다는 것은 바닷가에 깔려있는
자갈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가 여기저기 다치고 멍이 들지만,
전보다 더 윤이 나고 값지게 됩니다.
그대는 이제 훨씬 더 큰 배움,
더 큰 도전, 더 큰 삶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악몽은 언젠가는 삶의 일부인 축복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폭풍우를 막았다면 폭풍우로 생긴
그랜드캐년 같은 장관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많은 환자들이 암이나 그밖의 다른 병을
얻기 바로 직전의 순간으로 기적처럼 돌아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지울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이유일 것입니다.

상실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보여 주며,
사랑은 우리의 지정한 모습을 가르쳐 줍니다.
두려움, 분노, 죄의식, 인내심,
시간조차도 훌륭한 교사가 됩니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생에서 그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영혼이 성장할수록 가장 두려움인
죽음조차도 점점 작아집니다.
미켈란젤로가 말했습니다.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래야 한다.
그것은 간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삶, 행복, 사랑, 그 이상의 것들을
가져다주는 손은 죽음을 끔찍한 경험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끝은 단지 거꾸로 된 시작일 뿐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조각 작품들이
이미 그곳 돌 안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해 온 소중한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대는 삶에서 배움을 얻을 때에도 같은 일을 합니다.
그대 안의 훌륭한 것을 드러내기 위해
여분의 것을 깎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기도에 대한 응답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은 기도에도
선물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삶의 종착점에서 온 배움들을 접하다 보면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지금 일어나는 삶에 더욱 깨어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가르치는 동시에 배웁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실험하거나 미리 경험할 수 없으므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쳐 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무렵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우리는 삶의 끝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글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아직 삶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즐길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사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그대는 죽음의 실체를 인정하는 순간,
삶이라는 실체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고,
지금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것은 지금의 이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들을
최대한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은 본 것은 또 언제였습니까?
이것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경험들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언제나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별 아래에 살지만,
가끔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나요?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하나님은 세상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을 뜨는 매일 아침,
그대는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하루를 선물 받은 것입니다.
그대는 언제 마지막으로
그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았나요?
이번 생과 같은 생을 또 얻지는 못합니다.

그대는 이생에서처럼,
이런 방식으로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 아이들, 가족과
또 다시 세상을 경험하지 는 못합니다.
그대는 결코 이런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시기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인생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