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을 신약성서의 누가 기자는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 (누가 2:14)라는 말로 압축해 표현하였습니다.

이 예수 탄생 기사를 통해 누가는 나름대로 후대의 교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33년 동안의 삶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라는 구절로 함축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는 지상에 살았던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요, 지표였듯이,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회의 존재 이유요 목적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상태에 있었길래 누가 기자는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찬양했을까요?

이제 막 태어나서 고급 세마포가 아닌, 거친 천에 쌓여져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보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누가2:7).

말구유는 말의 여물통입니다. 그곳은 도저히 인간이 설 수 없는 가장 비천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비천한 위치에서 인생의 장을 열었던 예수의 모습에서 누가는 기독교의 존재 목적을 찾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회는 그 스스로가 비천했던 예수의 모습 그대로 세상을 대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에게 평화가 된다는 일종의 표본을 누가는 예수의 탄생 기사에 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기독교, 낮은 자리에 서는 기독교, 세상에 소외된 약자들과 함께 하는 기독교...

세상은 이들 약자들을 멀리 하고 부담스러워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교회 역시 그들 속에서 그들의 친구로 눈물을 닦아주고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일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경제 한파를 온몸으로 맞고있는 실직자들, 비정규직 근로자들, 노숙자들, 버려진 노인들과 결식 아동들, 탈북자들, 그리고 장애인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말구유”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비천한 마굿간까지 몸소 찾아간 것처럼, 교회가 이들 속에 서며 진실한 친구가 되어줄 때, 위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아래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해추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런 말구유의 위치를 벗어난다면 그 벗어나는 거리만큼 하늘의 영광에서 멀고 세상의 평화에서 요원해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어디에 서있습니까?
거친 천에 쌓여 비천한 여물통에 놓여있는 역사 속의 아기 예수보다는 황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사람이 만들어넨 예수를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눈물 닦아주던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이 아닌 힘세고 부유하며 똑똑한 사람들만을 반기며 축복하고 있는건 아닌지...
진정한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십자가 복음보다는 현세적 성공과 이익에 부합되는 값싸고 달콤한 거짓 복음만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감히 말하건데 이런 모습은 참다운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인간의 영악하고 이기적인 행태일 뿐 낮고 낮은 말구유에서 한 참 벗어난 모습입니다.

올해도 또다시 성탄을 맞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는 비천한 말구유에 있다는 누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시간이 아닌 바로 나 자신부터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선지자적 삶을 살겠노라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009. 12.
이준수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