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여러분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30회 장애인의 날’에 대한 소고

4월!!
참으로 좋은 달이죠.
산에는 산새들이 지저귀고 각가지 나무에선 연푸른 나뭇잎이 돋아나고 벚꽃은 꽃망울을 터트리며 들녘엔 아낙네들의 나물 캐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네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장애인 복지에 20년을 몸을 바쳐 투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지 모르지만 일에 미쳐서 살았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창밖의 세상은 이제 희망으로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용기의 나래를 펴려 하지만 우리 안의 세상은 움츠린 영혼의 창속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한번쯤은 나보다는 당신을 사랑하며 관심 가지고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진실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는 오직 당신에게만 해당될까요? 그렇지는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해(1981년)가 어제 같은데, 그 때는 저도 갓 스무 살을 넘기는 시기라서 꿈도 많았습니다. 그런 꿈을 안고 지나온 지 벌써 30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입니다.

해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들의 생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방송사들은 가지가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마음은 늘 아픔으로 아려 옵니다. 장애인의 달에만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지 말고 늘 평상시에도 우리 장애인들에게 늘 4월만 같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이 힘들어 할 때 따스한 햇볕과 봄비가 새싹을 돕듯이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의 손이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회상을 해보면 참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지만 여전히 “장애인 복지는 선진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는 말이 나오니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현실적으로 돌아가 보기로 합시다. 그저 저의 넋두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라는 내용으로 글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고로 관심은 사랑이라고 정의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성경말씀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누가복음 10장 30절~3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 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浮費)가 더 들면 내각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남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예수는 진정한 이웃이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바로 관심으로 시작된 사랑의 행동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부분을 통하여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하는 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부상당한 여행자를 구조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 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에서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입니다.

구조 거부 죄 또는 불구조 죄라고도 하며, 사형제도, 양심적 병역 거부와 함께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법적 쟁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노숙인과 거리의 사람, 위급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그러려니 하며 무심이 바라만 보고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전 프로야구 선수였던 고 임수혁 선수가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식물인간이 된 것”이 화두가 되어서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2008년 5월 23일 선한 사마리안 법의 취지를 수용하여 본회의에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선한 사마리안 법에 경우, 외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고 선한 취지의 행위를 장려하기 위한 면책규정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의 현실을 생각해 봅니다. 어느 지자체에서 도입한 “무한 돌봄 사업”이 전국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지만 우리의 이웃은 무한 돌봄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관심 밖에서 울고 있습니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주변에서 여러분의 힘과 도움이 필요하신 분을 만나보지 않았습니까? 한번이라도 만나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으로 그들에게 다가 갔습니까?

정부나 교회가 복지 프로그램을 많이 수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혜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고 미비합니다. 우선 당신을 통한 사역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여 나는 이래서 참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유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당신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펼칠 기회를 지금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헌신과 봉사는 따로 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가끔은 듣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관심과 사랑의 행위는 누구든지 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지금 시작해 보십시오. 30주년을 맞은 장애인의 달에도 장애인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끔은 이런 강조를 합니다.

“만짐의 미학”을 이야기 합니다. 만짐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속하게 생각하면 저속하게 비추어질 수 있는 용어이지만 여기에서는 바로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만 주어도 모든 것이 해결되어질 것 같은 현상 말입니다.

속 시원히 후련하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먼저 해결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애인으로써 20년을 넘게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몸부림치며 생활시설을 운영하며 몸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만짐의 미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바로 주저하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을 통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제30회 장애인의 달을 맞이하여 ‘관심’이라는 주제로 짧고도 긴 생각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장애인 문제나 기타의 모든 문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본’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어느 정도 공감도 됩니다. 그러나 자본만이 만능해결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주님의 계획 바로 ‘당신이 행할 관심’이 전제되어야 하늘나라 지평이 넓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바로 “만짐의 미학으로 여러분 사랑의 관심”을 표현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족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제30회 장애인의 달에는 당신의 따뜻한 손끝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글/김광식 목사 (‘크리스챤연합신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