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 밸리연합감리교회에 있은 3,40대 부부들을 위한 집회인 ‘아름다운 부부공동체 모임’ 에 강사로 초청받아 전한 말씀입니다.>


어제 금요예배 밀알집회 때 말씀을 전한 데 이어 오늘 또 다시 밸리연합감리교회 ‘아름다운 부부공동체 모임’에 참석하여 부족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을 커다란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설교 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난 2002년에도 밸리연합감리교회에서 초대해주셔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저희가 처음으로 교회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아 가진 첫 간증집회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진행할지 몰라 별 준비도 없이 강단에 올라 간신히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많은 성도분들이 관심있게 경청해주시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셔서 저희들 너무나 감사했고 밸리연합감리교회에 대한 따스하고 정겨운 인상이 오랫동안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교회를 방문하여 교역자분들과 성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길 바라던 차에 이런 귀한 집회를 또 다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반갑고 영광스러우며 감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부디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함을 끼치는 값진 은혜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실 이런 부부모임 특강은 저희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조금 당황도 되고, 저희 역시 여느 부부와 다름없는 평범한 커플인데 주제넘게 많은 분들 앞에 서게 되는 것 같아 매우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그저 저희가 살아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제도 제가 말씀을 전한 관계로, 오늘은 가급적이면 말을 줄이고 제 아내에게 마이크를 많이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제 아내가 얘기를 재미있게 엮어나가는 재주가 있어 이런 강의에는 더 제격일겁니다.

처음 20분 정도는 제가 장애인인 처지에서 이내를 만나 결혼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여러 어려움들과 마음가짐, 소감 등을 간략히 말씀 드린 다음, 제 아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저희의 만남, 결혼, 현재 살아가는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는다면 여러분이 궁금하신 사항에 대해 질문을 받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총각 때에도 제가 먼저 이성에게 사귀기 위해 접근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아니 그 보다는 육체적 장애로 인해 이성에게 다가갈 현실적인 기회와 자신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춘기 이후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고 사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내가 다가가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일종의 장애인 특유의 경계심과 거절당하거나 망신당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혹은 자괴감이 한 인간으로서의 정상적인 욕구를 짓눌러 왔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물론 대학교 입학 이후 결혼할 때까지 십 수년 동안 이성을 사귀어 본 경험이 두어 차례 정도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내가 처음부터 다가선 적은 한 번도 없고 그들이 먼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 다음 내가 반응을 보여서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성이 접근할 때 저는 우선 소극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한동안 그 사람의 태도를 살핍니다. 그 마음이 진심인지, 단지 장애인에 대한 일시적 동정이 아닌지 우선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2번의 경험은 이런 동정과 일시적 호기심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서 나를 대해 주었고 나도 마음의 문을 열어 어느 정도 관계가 지속된 케이스들입니다.

하지만 결국 만남의 결실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좌절의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저의 육체적 장애로 인한 사회의 곱지 못한 편견과 선입관이 정상적인 만남을 방해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정상적인 남자들에 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장애로 인해 좌절을 겪을 때마다 가슴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솟구쳤고 나의 운명적 한계에 괴로워했지만, 이런 감정을 겉으로 표출한다면 그나마 남아 있는 한 가닥 자존심마저 짖뭉게 버리는 것 같아 아픈 심정을 속으로만 삭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나이 서른쯤 되어 지난 경험들을 되돌아보니, 저의 이런 반응들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운명에 당당히 내가 맞서지 못하고 책임을 다른 데 돌리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아니었나 하고 뼈저리게 반성이 되었습니다. 즉, 상대에게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기보단 내 자존심을 먼저 챙겼고 운명 극복을 위한 치열한 노력보다는 환경을 탓했으며, 이해하기 보단 이해 받으려고 했고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으려고만 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뭔가 좀 이치를 깨닫고 철이 들려고 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보다 넓은 가슴을 달라고. 커다란 포용력과 이해심이 있어야겠다고. 당장의 눈앞의 감정에 좌우되기보다는 보다 멀리 있는 진실을 바라 볼 수 있는 지혜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 때가 1999년 봄이었는데 이런 기도를 6개월 정도 드렸다고 기억됩니다.

이렇게 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더니 곧 기도의 응답이 왔습니다. 잠시 후 제 아내가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1999년 11월 말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아내를 알게 되었고 짧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나가 한달 동안 17번이나 만났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눴고 둘 사이에 공통점이 참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비록 나이는 4살 어리지만 생각은 무척 깊고 현명하며, 저의 고독과 상처를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상큼하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미국에 들어와서도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나갔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저와 함께 하는 삶이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란 걸 잘 알기에 제 감정만을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저는 또 다시 좌절감을 맛볼지 모르지만, 아무런 후회나 아쉬움 없이 오직 그녀가 원하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리라 하며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이런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아내가 어려운 결정을 하고 가족과 헤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저에게로 와주어 2000년 11월 4일 LA 나성한인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껏 10년 동안 함께 오순도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진실된 사랑이란 내가 내 손으로 움켜쥐려 할 때는 멀리 달아나 버리지만, 내 욕심을 버리고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저절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제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결혼 10년이 되었지만, 저희 부부가 나아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기만 합니다. 3년 전에 쌍둥이 남매 조애나와 브라이언이 태어나 생활이 더 분주해졌으며 작년부터 제 사역이 시작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입니다. 이런 바쁘고 긴박한 삶 가운데서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며, 별 도움도 주지 못하고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제 자신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이런 미안함과 아쉬움 속에서도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비록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나와 한 평생 살아가는 삶을 통해 자신에게 향하신 그분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몸 불편한 남편 만나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고생만 하다 간다고 한스러워 하지 말고 이런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끼치는 값진 인생을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부란 함께 살아도 각자 걸어갈 길이 있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꿈을 이루도록 이해하고 존중하며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사랑은 처음엔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감정만으론 오래 가기 힘들며, 참고 인내하며 배려하고 감싸 안는 가운데 나날이 쌓여가고 돈독해진다는 것을 강조하며 저의 얘기를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준수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