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덕분에 큰 복을 받았습니다.

신학교에서 주일 예배 후 마지막 축도를 하고 나오는데, 한 여성 성도가 꼭 같이 집으로 가자고 한다.
“지난번 선교사님이 기도를 해 주고 난 이후에 큰 복을 받았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거의 강권하다시피 하여 아내와 같이 교회 근처에 있는 집으로 갔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카렌 신학교 근처로 치앙마이 시내에 있는 거의 유일한 카렌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수십 년 전부터 카렌부족을 위한 센터가 있었고 산에서 치앙마이로 이주한 카렌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거주한 이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큰 불편함 없이 도시근처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빠니코’라는 이 여성도 그런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이었다.

5년여전에 기도하였던 기억이 나는데, 집주변이 확실하게 변하였다.
안 쪽에 번듯하게 새로 지은 집, 하얀 승용차는 물론이고, 앞에는 2층 집도 단정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 시점이 내가 5년 전쯤에 기도한 이후에 특별한 복이 임하였다는 것이다.

목을 축이라고 시원한 물이 나와서 같이 기도하였지만 집안 기도실에 가서 다시 기도해 달라고 한다.
기도실에 가니 간증이 바로 나왔다.
교회를 제대로 나가지 않았고 가난하였으며, 술을 즐기며 살았다고 한다.
한 교인의 소개로 방콕에 있는 기독교 집회에 다녀오고 난 뒤 하나님에 대한 요청이 이루어져서 술을 끊고 난 뒤 한 일을 소개하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지혜를 구하고 난 뒤 매 순간 기도와 온전한 십일조 그리고 관찰과 열심이었다.
학력이 없어서 글도 모른다.
태국어도 시원치 않다.
그런데 태국인들을 위한 보따리 장사(?)가 잘 되어 어디서인지 모르지만 돈이 들어와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의 기도가 그녀가 표현한 것과 같이 잘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일이 잘 된 것만은 아니었다.
2년전에는 남편이 집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뒤 세상을 떠나는 사건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 큰 사건도 그녀에게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소위 ‘잘됨’이라는 고백을 멈추지 못하게 하였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지식과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준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건과 일들과 날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악수를 하는데, 돈을 쥐어 준다.
같이 기도한 막내 아들도 악수를 하는데 돈을 쥐어 준다.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정도하는 300받씩, 600받이다.
태국에서 노동자가 하루 일하면 받는 액수이니 적은 돈은 아니다.
그 돈의 모습을 장사하는 분들이 모으는 접어진 돈이었다.
그녀의 땀과 수고와 감사의 마음이 깊숙이 스며든 돈이었다.

무식하리만큼 한 그녀의 표현과 태도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고, 조금이라도 세련되게 보이려 하고, 배운 티를 내려는 인간적인 냄새가 내 자신에게도 숨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나의 거울이다.